포스트시즌은 단기전이다. 매 경기가 총력전으로 전개된다. 때문에 순간의 방심이 팀을 큰 위기에 빠뜨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SK가 패배를 통해 이 교훈을 뼈저리게 배웠다.
SK는 17일 문학구장에서 열린 롯데와의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4-5로 졌다. 충격이 있을 법한 역전패였다. SK는 선발 윤희상의 호투와 타선의 장타력으로 6회까지 4-1로 앞섰다. 그러나 불펜 운영의 실패와 몇몇 전술적 요소가 꼬이며 결국 2차전을 내줬다. 사직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조금은 무거워졌다.
역설적으로 역전패의 씨앗은 팀이 2점을 추가해 4-1로 도망간 6회 뿌려졌다. SK는 2-1로 앞선 상황에서 조인성의 2타점 적시타로 2점을 뽑았다. 전날(16일) 1점의 살얼음판 리드를 지켰던 SK에게 3점은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어 보였다. 그러나 SK 벤치는 좀 더 욕심을 부렸다. 내야 수비의 핵이라고 할 수 있는 박진만 타석 때 대타 이재원을 내세웠다. 추가점을 위한 용병술이었다.

이재원은 볼넷을 골라 나갔다. SK는 다음 타석에서도 조동화 대신 모창민을 대타로 냈다. 점수차를 더 벌리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느껴졌다. 실제 모창민이 중전안타를 치며 이 작전은 거의 성공할 뻔했다. 그러나 2루 주자 조인성이 롯데 중견수 전준우의 송구로 홈에서 잡히며 물거품이 됐다.
공격적인 대타 카드는 수비력의 약화를 불렀다. 박진만 대신 투입된 최윤석은 7회 수비에 나서자마자 불안한 모습으로 SK의 위기를 키웠다. 침착함을 유지했다면 전준우의 타구는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황재균은 잡아낼 수 있었다. 수비불안은 결국 7회 3실점으로 이어졌다. 교체를 통해 손에 쥔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보통 단기전에서는 수비와 안정감에 최우선을 두고 경기를 보수적으로 운영한다. 게다가 SK는 이미 3점의 리드를 확보한 상황이었다. 지키는 쪽이 일반적인 포석이었다. 그러나 SK의 생각은 달랐다. 좀 더 여유 있는 ‘다음 상황’을 위해 무리수를 뒀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박진만의 교체는 팀의 첫 번째 패착이 됐다.
7회 엄정욱 투입도 ‘다음’을 생각한 SK의 전술이었다. 다음날 경기가 없긴 했지만 SK는 박희수 정우람을 최대한 아끼고 싶어 했다. 1차전처럼 엄정욱이 1이닝을 막으면 8·9회는 박희수 정우람으로 마무리할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남은 일정에 대한 생각이 SK 벤치를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엄정욱의 구위는 생각보다 좋지 않았고 여기에 최윤석의 실책성 플레이가 겹쳤다.
4-3으로 쫓긴 상황에서 박희수가 긴급투입됐지만 주자가 득점권에 있는 상황이었다. 안타 하나면 동점이었다. 제 아무리 박희수라고 해도 부담이 없을 수는 없었다. 다소 긴장한 듯했던 박희수는 끝내 대타 조성환에게 동점 적시타를 맞았다. 만약 7회 시작부터 박희수가 마운드에 올랐다면 좀 더 편안한 상황에서 투구가 가능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만수 감독도 이 부분은 “감독이 잘못했다”고 시인했다.
반대로 쫓아가는 처지였던 롯데는 벼랑 끝 전술을 썼다. 정대현을 조기에 투입시켰다. SK와는 반대로 ‘다음 상황’을 생각하지 않은 수였다. “승부처에서 정대현을 쓴다”라는 초심으로의 복귀이기도 했다. 조성환의 대타 투입 역시 과감했다. 9회 1사 2루에서는 박재상을 거르고 최정 이호준과의 승부를 택하기도 했다. 전체적으로 롯데의 전술에는 앞만 보고 달리는 절박함이 묻어나왔다. 결국 롯데는 그 힘을 바탕으로 경기를 뒤집었다.
준플레이오프 당시 두산도 다음 상황을 생각하다 롯데의 승부수에 말려들었다. 4번 타자 윤석민에게 희생번트 사인을 내다 실패했고 연장을 대비해 마무리 프록터 카드를 아끼다 지기도 했다.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의 SK도 그와 비슷한 맥락에서 움직였고 결과도 좋지 못했다. 다만 다른 점도 있다. 두산이 그 패착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시리즈에서 탈락한 뒤였다. 반면 SK는 다시 원점에서 출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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