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에 와서 감기가 오히려 심해졌어요".
17일 플레이오프 2차전을 앞둔 문학구장. 롯데 자이언츠 4번 타자 홍성흔(35)의 목소리는 잠겨 있었다. 얼마 전 찾아온 불청객인 감기몸살 탓이다. 준 플레이오프를 치르면서 홍성흔은 15타수 6안타, 타율 4할로 좋은 타격감각을 유지했지만 장타와 타점이 없었다. 시리즈를 통과했지만 중심타자로 아쉬움이 남는 성적이었다.
홍성흔이 출루에만 주력해 작은 스윙을 한 건 결코 아니다. 걸리면 넘어갈 것만 같은 큰 스윙으로 마운드의 상대 투수들 기를 죽여 놨다. 포스트시즌에도 홍성흔의 힘찬 스윙은 계속됐지만 타구의 힘이 조금 부족해 담장 앞에서 잡힌 게 적지 않다.

플레이오프를 앞두고는 SK 4번타자 이호준이 홍성흔에 도발을 했다. 양승호 감독에 롯데 4번타자가 누군지 확인한 뒤 "4번타자 싸움에서 이길 것이다. 그러면 신문 1면에 둘이 비교해서 크게 나올 것 아닌가"라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로 1차전에서 이호준은 선제 솔로포를 터트려 홍성흔을 자극했다.
홍성흔은 "인천에 올라와 감기가 도무지 낫지 않는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롯데 선수단이 묵고 있는 숙소에 난방을 요청했지만 아직 개인난방이 가능한 시기가 아니라는 대답과 함께 이불 몇 개만 홍성흔에 전달했다고 한다. "밤새 이불 끌어안고 잤다. 너무 추워서 그 밤중에 양말까지 찾아 신었다"고 말한 홍성흔은 "뒷방 늙은이도 아니고 내 방을 그늘진 곳에 줘서 더 춥더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나이 먹어서 서럽다"고 너스레를 떨던 홍성흔은 타격훈련을 위해 나서며 "만약 오늘 활약하면 '몸살감기 투혼'이라고 써 달라"고 당부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는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약속을 지켰다. 2회 선두타자로 나서 SK 선발 윤희상을 상대로 좌월 솔로포를 쏘아올린 것. 이번 포스트시즌 첫 홈런이자 장타, 게다가 중심타선에서 터진 첫 홈런이기도 했다. 볼넷 2개 포함 3타수 1안타 1타점으로 5-4 역전승에 밑거름이 됐다.
이번 포스트시즌 타율 3할6푼4리로 그라운드에서 만점 활약을 펼치고 있는 홍성흔이지만 더그아웃 리더로서도 제 역할을 하고 있다. 홍성흔이 주목한 건 롯데 선수들이 두산과 SK를 상대할 때 분위기가 다른 점이다. 두산과 준 플레이오프를 할 때는 젊은 후배들이 모두 야구를 즐기는 분위기였는데 인천에 와서 부담을 다시 느끼기 시작했다고 느낀 홍성흔은 '상대를 생각하기 보다 우리 플레이를 즐기자'고 다독였다.
올 시즌을 끝으로 홍성흔은 롯데와의 4년 계약이 끝나고 두 번째 FA를 맞는다. 그라운드 안팎에서 보여주는 팀에 대한 헌신과 함께 그의 가치도 조용히 올라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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