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오프라는 큰 무대에서도 긴장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롯데 자이언츠 영건 고원준(22)이 기대를 뛰어넘는 호투를 펼쳤다.
고원준은 19일 사직구장에서 벌어진 '2012 팔도 프로야구' SK 와이번스와의 플레이오프 3차전에 선발로 등판했다. 올 시즌 고원준은 19경기에 나서 3승 7패 평균자책점 4.25에 그쳤다. 1군과 2군을 오가며 부침이 심했지만 9월에는 평균자책점 1.93으로 호투를 펼쳤다. 시즌 SK전 성적은 4경기 1승 평균자책점 2.86으로 시즌 성적보다 좋다.
이날 고원준은 최고 구속 144km의 빠른공과 슬라이더, 체인지업, 커브를 앞세워 5⅓이닝동안 3피안타 2사사구 3탈삼진 무실점으로 최고의 피칭을 했다. 롯데 야수들 역시 연이은 호수비로 고원준의 어깨를 가볍게 했다. 고원준이 선발 마운드에서 버텨준 덕분에 롯데는 SK를 4-1로 꺾고 한국시리즈 티켓 획득까지 1승만을 남겨뒀다.

▲ 롯데, 선발투수 한 명을 찾았다
사도스키의 이탈로부터 시작된 롯데의 선발진 붕괴 속에 고원준은 중책을 안고 마운드에 올랐다. 불확실한 선발 카드를 내민 롯데 양승호 감독은 "3차전과 4차전은 타선의 힘으로 승부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경기 전에도 롯데 양승호 감독은 "고원준이 4이닝 무실점만 해 주면 바랄 게 없다"고 할 정도였다. 올해 고원준이 6이닝 이상 소화한 경기는 단 3경기로 체력이 많이 떨어져있는 상황, 9월 이후 호투를 펼친 고원준이지만 마지막으로 6이닝을 넘긴 건 7월 28일 두산전이었다.
롯데가 만약 한국시리즈에 진출하게 된다면 현재처럼 송승준-유먼 두 명으로 시리즈를 운영하긴 힘들다. 최소 3명, 혹은 4명의 선발투수가 필요한 게 한국시리즈다. 이제껏 고원준은 양 감독에 신뢰를 심어주지 못했지만 시리즈 승부의 분기점에서 호투를 벌여 결과적으로 롯데는 한 명의 선발투수를 추가하게 됐다.
▲ 겁 없는 고원준, 롯데를 두 번 구했다
올해 심한 부침을 겪으며 시즌 중반에는 아예 선발진에서 탈락했던 고원준이지만 상동 기숙사에 자진해서 들어가며 부활에 대한 의지를 보였다. 그리고 9월 이후 고원준은 힘이 떨어진 롯데 마운드에 힘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지난 2일 군산 KIA전, 고원준은 위기의 팀을 구하는 최고의 피칭을 했다. 시즌 막판 연전연패로 롯데는 4위 자리까지 위험해졌다. 반면 KIA는 선발진의 힘을 앞세워 롯데를 압박하던 상황, 고원준은 팀이 5연패에 빠져 있던 KIA전에 깜짝 선발로 등판해 4이닝 3피안타 무실점으로 기대 밖 호투를 했다. 그날 경기를 잡으면서 롯데는 천신만고 끝에 준 플레이오프 티켓을 거머쥐었다. 에이스가 해야 할 일을 겁 없는 신예 고원준이 해낸 것이다.
▲ 양승호 감독 믿음에 보답했다
롯데 양승호 감독은 고원준을 특히 아꼈다. 지난해 내기를 걸어 고급 구두를 직접 사서 선물을 할 정도였다. 그렇다고 '오냐오냐'만 한 건 아니다. 나태해지면 따끔하게 매도 들었다.
올 시즌 초반 고원준은 심한 부진을 겪었다. 4월 평균자책점 4.96 2패, 5월 평균자책점 5.40 1승 2패를 기록했다. 그래도 양 감독은 선발 로테이션에서 고원준을 빼지 않았다. "본인이 납득할 때까지 1군에 둘 것"이라는 게 그 이유였다. 결국 고원준은 6월이 돼서야 2군에 한 번 다녀온다.
양 감독은 이번엔 2군에 간 고원준에 "구위가 나아지지 않으면 결코 안 올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끝까지 기회를 줬지만 본인이 못 살렸으니 변화된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젊은 선수가 벌써부터 술을 좋아하면 안 된다"고 따끔한 질책도 잊지 않았다.
양 감독의 당근과 채찍 속에 고원준은 이제야 기대에 부응하기 시작했다.
cleanupp@osen.co.kr
부산=민경훈 기자,rumi@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