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 포스트시즌 핵심 키워드, '내일은 없다'
OSEN 이대호 기자
발행 2012.10.20 06: 55

12일 사직구장 인터뷰실. 준 플레이오프 전적 1승 3패로 시리즈 탈락의 고배를 마신 두산 김진욱 감독은 "감독이 잘못해서 졌다"라는 말로 시즌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인터뷰를 시작했다. 그날 두산은 3-0으로 앞서다 8회 동점을 허용하고 이어 연장 10회 통한의 끝내기 실책이 나와 롯데에 플레이오프 티켓을 건네줘야 했다.
김 감독이 뒤늦은 후회를 한 장면은 8회다. 3-0으로 앞서가자 김 감독은 5차전을 머릿속에 떠올리게 된다. 당장 눈 앞의 경기가 아닌 내일을 바라본 것이다. 니퍼트의 불펜 투입은 여유있는 상황에서 시험해 본 성격이 강하고 프록터를 끝까지 내지않고 홍상삼으로 밀어붙은 것도 5차전을 염두에 둔 운용이었다. 그렇지만 두산은 그 경기를 허무하게 내주면서 내일은 없었다.
플레이오프 역시 마찬가지다. 1차전에서 SK는 김광현의 깜짝 호추로 승리를 거두고 한국시리즈 티켓을 거머쥐는데 유리한 고지를 점한다. 2차전 6회까지 SK는 플레이오프 통과의 7부능선을 넘는 듯했다. 롯데 최강의 불펜투수 정대현을 공략, 4-1까지 점수를 벌렸고 불펜투수들은 어깨가 싱싱했다.

이때 SK 이만수 감독은 7회 박희수 대신 엄정욱을 투입한다. 여기서 SK는 실책성 플레이 2개가 겹치면서 순식간에 동점을 허용한다. 뒤늦게 이 감독은 박희수를 냈지만 아무리 잘 던지는 투수라도 위기상황에서 심리적으로 위축되기 마련, 대타 조성환에 적시타를 맞는다. 여기서도 SK는 연장 10회 롯데에 패한다.
이 감독 역시 얼마 전 김 감독이 했던 말을 그대로 한다. "감독의 패착"이라고 말이다. 이 감독은 "박희수를 최대한 아끼고 싶어서 점수차가 벌어지자 엄정욱을 투입했다"고 설명했다. 어떤 감독이든 다음 상황을 머리에 그리기 마련, 그렇지만 결과적으로는 독이 되고 말았다. SK 구단 관계자는 "만약에 조인성이 정대현에게 안타를 안 쳐서 2-1로 갔으면 처음부터 박희수가 나왔을 것 아닌가. 결과만 놓고보면 그게 나았을 수도 있다"고 토로했다.
3점차 리드 상황에서 엄정욱을 투입한 건 충분히 이해가 가는 선수기용이다. 한국시리즈까지 염두에 두면 선수들의 체력관리는 필수고, SK는 1차전에서 좋지 않은 투구내용을 보였던 엄정욱의 부활이 절실했다. 문제는 포스트시즌은 내일을 염두에 두는 게 오히려 자충수가 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반면 롯데는 이번 플레이오프 매 경기를 '총력전'으로 나서고 있다. 가용 자능한 자원은 모두 활용하고 내일을 생각하지 않는 운용을 하고 있다. 19일 3차전도 그랬다. 현재 롯데 불펜에서 가장 믿을만한 카드인 김성배는 3-0으로 앞선 6회 1사 1,3루에서 마운드에 올라 두 타자를 범타 처리한다.
만약 롯데가 4차전, 그리고 5차전을 염두에 뒀으면 김성배를 그 시점에서 내리는 게 맞다. 그래야 최소 한 타자라도 상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성배는 8회 2사까지 2⅓이닝을 던지고서야 마운드를 내려갔다. 이로써 김성배는 4차전 출전이 힘들어졌다. 이것도 롯데가 바로 눈 앞의 3차전에만 집중해 '올 인'을 했기에 가능한 결과였다.
아직 한창인 포스트시즌이 과연 한 수 앞을 바라보는 자에게 승리의 영광이 돌아갈 것인지, 아니면 눈 앞의 승리에만 집중하는 쪽이 최후에 웃을지 아무도 모른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최소한 지금까지는 바로 앞만보고 달려온 롯데가 유리한 고지에 올랐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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