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치고 장구도 쳤다. SK 부동의 리드오프 정근우(30)가 빛나는 재기로 위기에 빠졌던 팀을 구해냈다.
정근우는 20일 사직구장에서 열린 롯데와의 플레이오프 4차전에 선발 2루수 및 1번 타자로 출장해 4타수 4안타 1볼넷 2득점을 기록했다. 포스트시즌 들어 들쭉날쭉한 타격감으로 벤치의 애를 태웠던 정근우는 가장 중요한 순간에 부활하며 이름값을 톡톡히 했다.
정근우는 전날(19일) 3차전에서 4타수 무안타에 그치며 1번 타자의 임무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경기 전 타격 컨디션에 대해서도 말을 아꼈다. 다소 답담함이 묻어나는 표정이었다. 4차전 시작도 썩 좋지는 못했다. 첫 타석에서 좌전안타로 출루했으나 1사 2·3루에서 이호준의 우익수 플라이 때 홈에 들어오지 못했다. 3루 베이스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귀루하지 못해 홈으로 뛸 타이밍을 놓쳤다.

이 실수가 머릿속에 남아 있었던 까닭일까. 정근우는 더 투지를 불태웠다. 3회 무사 1루에서는 번트 모션으로 진명호를 괴롭힌 끝에 스트레이트 볼넷으로 출루했다. 5회 1사에서는 좌전안타를 치고 나갔고 박재상의 2루타 때 일찌감치 스타트를 끊어 홈까지 파고들었다. 정근우의 빠른 발이 돋보이는 장면이었다.
2-0으로 달아나는 추가점을 뽑은 7회에는 펄펄 날았다. 선두 타자로 들어선 정근우는 3루쪽 땅볼을 쳤다. 그러나 황재균이 공을 뒤로 흘린 사이 이를 놓치지 않고 2루까지 진루해 단번에 득점권 상황을 만들었다. 정근우의 진가는 그 다음 나왔다. 박재상이 희생번트를 대지 못해 런다운에 걸릴 위기에서 송구가 2루로 향하는 것을 보고 과감하게 3루로 돌진해 살았다. 롯데 야수들을 허탈하게 하는 주루 플레이였다.
SK로서는 정근우의 재치 덕에 최대의 위기가 최고의 기회로 돌변했다. 결국 정근우는 최정의 적시타 때 홈을 밟아 팀의 2득점을 모두 책임졌다. 살얼음판 리드를 지키던 SK는 좀 더 안정적으로 불펜을 운영할 수 있었고 결국 승부를 5차전까지 몰고 가는 데 성공했다. 9회 홍성흔에게 솔로 홈런으로 1점을 뺏겼음을 고려하면 정근우의 발이 팀의 1승을 만든 셈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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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손용호 기자, spjj@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