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자라는 과정에 있어서 영향력을 행사하지 말자가 저희의 최우선 원칙입니다. 시청률도 중요하지만 우리 프로그램에 나온 아이들이 망가지거나 잘못된 방향으로 가지 않도록 하는 게 훨씬 중차대한 일이니까요.”
SBS ‘스타 주니어쇼 붕어빵’(이하 붕어빵) 연출자 최원상PD는 프로그램의 인기 비결을 묻는 질문에 이 같이 답했다. 쟁쟁한 아이돌 스타들을 제치고 동시간대 시청률 1위 자리를 지키는 비결 치고 다소 교과서적인 답이지만, ‘붕어빵’이 오랜 시간 시청자의 인식 속에 은근히 스며들며 깊은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핵심에 대안을 찾을 수 없는 이유다.
지상파 방송 3사의 예능 격전지 토요일 오후 5시대에 ‘붕어빵’은 조용한 강자로 정평이 나있다. '붕어빵'과 동시간대 경쟁하는 프로그램은 MBC '우리 결혼했어요'와 KBS 2TV '청춘불패'. 두 프로 모두 아이돌 스타들을 전면에 내세워 알콩달콩한 연애담과 농촌체험기로 재미를 선사하고 있지만, '붕어빵'의 무공해 청정 웃음에 미치지 못하는 기록을 보인 지 이미 수개월째다. 나들이가 많은 시간대지만 ‘붕어빵’은 동시간대 유일하게 시청률 두 자리를 넘나드는 기록을 보이기도 한다.

최근 SBS 목동 사옥에서 만난 최 PD는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붕어빵’ 제작기를 들려주는 것으로 시청률 1위 비결을 묻는 질문에 대한 답을 대신했다. 아이들이라는 대상에 맞춰 특화한 프로그램 운용 방식이 빛을 발한 결과였다.
- 성인 대상 프로그램과 다른 점이 뭔가?
“성인들은 프로그램의 성격을 파악하면 일일이 지시하지 않아도 알아서 표현해 주지만, 아이들의 경우는 다르다. 본인들이 실제로 재밌어야 흥미로운 반응이 나오고 보는 사람도 즐거울 수 있다. 원하는 반응을 유도할 수가 없는 거다. 그래서 제작진이 재밌다고 생각하는 게 우리 프로그램에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제작진이 생각하는 재미 요소가 아이들에게도 즐거운 주제로 맞아야 한다.”
- 구체적인 예가 있다면?
“‘주니어 완전 정복’이라는 토크 코너가 있는데 한 번은 ‘20년 후의 내 모습’을 주제로 내놓은 적이 있다. 어른들이 보기엔 의미 있을 수 있지만, 이제 겨우 8년을 산 아이들에게 20년이라는 시간은 개념 자체가 없다. 아이들에게 좋은 주제가 아닌 거다. 그런 질문에 아이들은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엄마가 아빠보다 좋을 때가 언제인지를 물으면 아이들이 답할 수 있다. 가정에서 엄마가 공부시킬 때 아빠가 쉬엄쉬엄 하라고 할 때가 분명히 있다. 그럴 때 당연히 엄마 보다 아빠가 좋다. 아이들 입장에서 생각하고 반응할 수 있도록 눈높이를 낮춰야 한다.”

- 눈높이를 낮추는 특별한 노하우가 있다면?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적합한 주제와 질문을 찾아내는 수밖엔 없다. 매주 작가들이 과자 사들고 아이들 집에 방문해 놀아주곤 한다.”
- 연출하는 면에 있어서도 아이들 대상 프로그램은 차별점이 있을 것 같다.
“대상이 아이들이기 때문에 원하는 반응을 유도할 수가 없다고 말했는데 ‘붕어빵’의 가장 큰 특징 중에 하나가 조작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아이들이다 보니 녹화 시간 동안 졸려하고 화장실 가겠다는 걸 막을 수가 없다. 처음엔 자세 흐트러진 아이들을 보면서 똑바로 앉도록 했는데 시간 지나면서 그게 아이들 모습이구나 하는 생각에 그냥 두도록 했다. 화면에 아이들 코 파는 모습 여과 없이 잡힌다. 이후 그런 장면이 익숙해졌고 ‘붕어빵’의 색깔이 됐다.”
- 구체적인 예가 있을까?
“한 번은 아이의 자연스러운 반응 대신 밝게 웃는 화면을 따다가 인위적으로 붙인 적이 있다. 아이가 자기 엄마가 이야기 하는데 고개를 푹 수그리고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을 때였다. 아마 편집하던 PD가 보기에 안 좋아 보여서 그랬던 것 같은데 이런 건 아이를 키운 경험이 없어서 생기는 일이다. 아이는 지금 엄마의 말을 어느 때보다 집중해서 듣고 있는 거다. 다만 자기 이야기다 보니 쑥스러워서 그런 반응을 보이는 거다. 자식 키워본 경험이 있는 부모라면 다 안다. 그게 리얼하고 살아있는 그림이다.”
- 연출자가 생각하는 인기 비결은 뭔가?
“요즘 시청자들은 짜고 하는 것에서 재미를 못 느끼는 것 같다. 진심으로 하지 않거나 과장되게 반응하는 거 다 알아보신다. 있는 그대로의 것에서 웃음 상황이 생기고 거기서 감동받을 때 그 크기가 더 커지는 거다. 물론 진정성 부분에 대한 이야기는 10년 전에도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그 진정성을 알아보는 눈이 더 높아진 것 같다. 만드는 사람은 그러려면 더 솔직하고 진솔하게 다가가는 수밖엔 없다.”
- 앞으로도 1위 할 수 있을까?
“동시간대 방송되는 프로들과 선의의 시청률 경쟁을 한다. 다만 우리 프로그램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가학적일 수 없다. 어떻게 보면 체급싸움에서 불리하다. 아이들이 다치지 않는 범위에서 시청률 전쟁을 벌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청자들께 감사하다. 제약된 환경에서 최선을 다했는데 그걸 받아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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