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라는 목적지로 가는 길에 빨간 신호등이 너무 많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모습이다. 이런 양상으로는 5차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누군가는 파란 신호등을 켜야 할 때다.
SK는 20일 사직구장에서 열린 롯데와의 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2-1로 이기고 기사회생했다. 말 그대로 간신히 이겼다. 6이닝을 무실점으로 버틴 선발 마리오의 활약이 없었다면 가을 잔치는 그대로 끝날 수도 있었다. 승리라는 가치가 가장 큰 경기이긴 했지만 그냥 넘기기에는 경기 내용이 너무 찜찜했다.
사실 쉽게 갈 수도 있는 경기였다. 그럼에도 9회말 마지막 아웃 카운트를 잡을 때까지 애를 태워야 했다. 가장 큰 원인은 타선의 ‘교통체증’이었다. 많은 기회를 잡고도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질 못했다. 중심타선은 힘이 없었고 SK 특유의 세밀한 플레이도 긴장감 속에 무뎌졌다. 이기긴 했지만 이런 양상이 시리즈 내내 계속되고 있다는 점은 가벼이 여길 수 없는 문제다.

2차전에서는 정근우가 두 번이나 3루까지 갔음에도 불러들이지 못해 역전패했던 SK다. 외야 플라이 하나, 심지어 빗맞은 내야 땅볼 하나만 나왔어도 SK는 1·2차전을 싹쓸이할 수 있었다. 3차전에서는 아쉬운 수비와 중심타선의 무기력함이 도드라졌다. 4차전도 크게 다를 것은 없었다. 비록 이기기는 했지만 이런 답답함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난 경기였다.
경기의 주도권을 가져올 수 있었던 1회부터 막히기 시작했다. SK는 롯데의 임시선발 진명호를 상대로 1회 무사 1·2루의 기회를 잡았다. 3번 타자 최정에게 희생번트 사인이 나왔을 정도로 선취점이 절실한 SK였다. 그러나 이호준의 우익수 방면 뜬공 때 3루 주자 정근우가 홈으로 들어오지 못했다. 미리 홈으로 스타트를 끊은 탓에 귀루가 늦었다. 실책성 플레이였다. 결국 SK는 선취점의 기회를 놓쳤다.
3회는 점수가 날 수 없는 이유를 총망라한 ‘종합선물세트’였다. 선두 조동화의 안타와 정근우의 볼넷으로 무사 1·2루를 만든 SK는 박재상에게 희생번트를 지시했다. 하지만 박재상이 두 차례의 번트 기회를 모두 놓친 끝에 삼진으로 물러났다. SK답지 않은 야구였다. 여기에 중심타선까지 침묵했다. 최정 이호준 박정권은 모두 적시타를 만들어내는 데 실패했다. 1점을 향하는 길목에 빨간불이 네 번이나 들어왔다.
5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는 동안 SK 타선이 최고라고 평가받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이를 만회할 수 있었던 것은 짜임새 있는 작전야구와 중요할 때 터진 한 방의 힘이었다. 기회가 나면 선수들 스스로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파란 신호등을 만들었던 SK였다. 이런 기억을 곰곰이 되새길 필요가 있다. 5차전 선발이 상대 에이스 쉐인 유먼임을 감안하면 더 그렇다. 기회는 자주 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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