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발 김광현의 난조 속에 멀어지는 가 했던 한국시리즈 티켓을 되찾아온 이는 채병룡(31)이었다.
채병룡은 22일 문학구장에서 열린 롯데와의 플레이오프 5차전에서 0-3으로 뒤진 2회 팀의 두 번째 투수로 등판, 4이닝 동안 75개의 공을 던지며 1피안타 3볼넷 5탈삼진 무실점으로 역투했다. 달아오른 롯데의 방망이를 차갑게 식힌 채병룡의 활약 덕에 SK는 역전승을 일궈내고 삼성이 기다리는 대구행 티켓을 확보했다. 채병룡은 포스트시즌 첫 구원승으로 통산 5승째를 장식했다.
공익근무를 마치고 올 시즌 중반 1군에 돌아온 채병룡은 2년이 넘는 공백에도 불구하고 연착륙에 성공했다. 특유의 묵직한 직구는 물론 안정적인 제구력까지 그대로였다. 때문에 포스트시즌을 앞두고도 기대가 컸다. 선발과 불펜에서 모두 활용할 수 있는데다 지난해까지 포스트시즌에서만 15경기에 나선 풍부한 경험도 장점이었다.

그러나 이번 플레이오프에서는 유난히 등판 기회를 잡지 못했다. 채병룡은 롱릴리프의 역할을 부여받았다. 그러나 1·2차전에서는 선발 김광현 윤희상이 6이닝을 던졌다. 그 후 엄정욱 박희수 정우람이라는 필승조로 이어져 채병룡의 등판 기회가 없었다. 3차전에서는 박정배가 채병룡의 몫을 대신했다. 이만수 SK 감독은 “불펜 투수 중 박정배의 구위가 가장 좋다”면서 “채병룡은 구위가 조금 떨어진 상태”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4차전에서도 선발 마리오가 6이닝을 버텼고 마지막에 몰린 SK는 박희수와 정우람으로 경기를 마무리했다. 역시 채병룡에게 기회는 돌아오지 않았다. 4차전까지는 몸만 풀다 끝났다. 그러나 가장 결정적인 순간 마운드에 설 기회가 주어졌다. SK는 선발 김광현이 1⅔이닝 동안 3실점하고 무너지자 2회 1사 1·3루에서 채병룡을 급히 호출했다.
추가점 헌납은 패배의 지름길이었다. 제 아무리 강심장인 채병룡이라고 해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채병룡은 역시 씩씩했다. 첫 타자 전준우에게 볼넷을 내줘 만루를 허용하고도 흔들리지 않았다. 결국 강민호를 삼진으로 돌려세우고 위기를 넘겼다.
그 후에는 안정적이었다. 직구 최고 구속은 140㎞ 초반에 불과했지만 특유의 공 끝과 제구력으로 롯데 타자들을 제압했다. 낙차가 큰 슬라이더와 커브도 롯데 타자들의 타이밍을 뺏기에 충분했다. 이렇게 채병룡이 더 이상의 실점을 하지 않는 사이 타선도 야금야금 점수를 뽑아 경기를 뒤집었다.
3-3으로 맞선 5회 SK가 2점을 더 내며 역전에 성공해 채병룡은 승리투수 요건까지 갖췄다. 그리고 6회 2사에서 박희수에게 마운드를 넘기고 내려왔다. 팀 사정상 본의 아니게 ‘비밀병기’가 된 채병룡이었지만 5차전의 활약상은 그 단어가 딱 어울렸다. 이로써 채병룡은 2009년 한국시리즈의 눈물을 씻어낼 기회를 스스로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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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손용호 기자, spjj@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