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윤표의 휘뚜루 마뚜루]롯데 간부의 ‘우승 독려’ 발언, 득보다 실이 컸다
OSEN 홍윤표 기자
발행 2012.10.23 16: 42

지난 10월 15일 한화 이글스 사령탑으로 8년 만에 현장에 복귀했던 김응룡 감독은 취임 일성으로 “프로라면 우승을 목표로 삼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평소 “프로에서 2등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투의 표현을 자주 사용하곤 했다. 한국 프로야구 판에서 10차례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던, 거친 표현을 쓰자면 ‘우승 청부사’ 다운 발언이라고 하겠다.
프로선수라면, 프로 감독이라면, 프로구단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것이 우승이다. 그 험난한 길을 통과하고 정상에 서면 부와 명예가 보장된다. 그래서 어느 구단 관계자가 ‘이번에야말로 우리 구단은 우승을 해야 할 때’라고 말한다면, 그리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어찌 보면 당연한 얘기일 것이다. 더욱이 우승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춘 상태에서 주위 환경이나 구단 안팎의 분위기를 살핀 다음 그런 발언을 공표했다면, 구단의 강한 의지로도 읽힐 수 있겠다.  
그렇다 할지라도, 그 발언은 시점에 따라서는 미묘한 파장을 낳거나 그것을 받아들여야하는 당사자들로서는 은연중에 중압감을 느끼고, 심지어 반감을 가질 수도 있다.

롯데 자이언츠는 다시 올해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했다. 구태여 LG 트윈스의 사례를 들 것도 없이, 어느 구단은 4강에라도 올라가려고 아등바등하는가 하면, 롯데처럼 우승에 목말라하는 구단도 있다. 
롯데 구단은 올해를 우승의 적기로 보고, 선수단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장병수 사장이 1월에 공식적으로 선수단에, 바꿔 말하면 양승호 감독에게 우승을 주문했다. 배재후 단장은 준플레이오프 기간인 지난 10월 11일에 기자에게 “우승이라는 옥동자를 낳기 위해 감독과 코치, 선수까지 참 많은 부분을 바꿨다. 올해는 옥동자를 낳을 때다”라고 힘주어 말했다고 한다.
그의 말대로 롯데는 올해 나름대로 투자를 한 것은 맞다. 마운드의 주축이었던 장원준을 군대로 보내고, 타선의 핵인 이대호를 일본 오릭스 구단에 내주었지만, 정대현과 이승호 두 FA 투수를 SK에서 데려오는데 성공했고, 시즌 중 두산에서 용덕한을 데려와 강민호를 받치게 했고, 김성배를 2차 드래프트를 통해 영입해 요긴할 때마다 잘 써먹었다. 정작 부상 등의 이유로 이승호는 거의 활용하지 못하고 정대현도 시즌 후반에야 1군에 합류하는 등 투자 성과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비효율적인 보강이 끼어있긴 했지만, 이 같은 전력 강화를 바탕으로 롯데 구단 수뇌부는 시즌 중 끊임없이 선수단을 향해 입버릇처럼 ‘우승 노래’를 불렀다. 롯데가 정녕 우승 전력을 갖추었는가하는 문제와는 별개로.
포스트 시즌을 앞두고 야구해설자들 가운데 롯데를 우위로 점찍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객관적인 전력 평가에서 두산은 물론 SK에도 못 미친다는 평가를 내놓았다. 이는 롯데의 전력이 여전히 한국시리즈까지 올라가기에는 미흡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1984년이나 1992년에는 최동원이나 윤학길, 영종석, 박동희 같은 강력한 투수들이 버티고 있었기에 끝내 정상에 설 수 있었다.
올해는, 특히 단기전에서는 그렇게 활약할 수 있는 투수들이 없었음에도 롯데 구단은 우승을 바랐다. 간절한 염원이야 롯데 구단이나 응원하는 팬 모두 마찬가지겠지만, 무엇보다 선발 마운드가 튼실하지 못한 점에서 롯데 좌절의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양승호 감독도 포스트 시즌 들어 선발 투수의 취약을 자주 언급했다.
대사를 앞두고, 가급적이면 구단 프런트가 선수단에 ‘감 놓아라, 대추 놓아라’고 일일이 간섭하거나 ‘우승을 해야한다’고 주문을 거는 것은, 피하는 게 상례였다. 가뜩이나 긴장하고 있는 선수들에게 공공연하게 우승 주문을 외는 것은 자칫 ‘천기(天機)’를 건드리는 짓이 될 수도 있고, ‘조심 또 조심’하면서 최대한 의욕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분위기 조성해주는 것이 오히려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롯데 간부의 ‘우승 독려’ 발언은 잘 되면 선수단에 ‘약’이 되거나 자극이 될 수도 있었겠지만, 잘 못되면 쓸 데 없는 압력으로 작용해 역효과를 낳게 되는 일이었다. 플레이오프에서 드러난 롯데 선수들의 행동거지를 보면, 평소에도 그런 말을 자주 들어 면역이 됐을 법한데도, SK 선수들에 비해 지나치게 긴장하고 서두르는 모습이 역력했다. 여유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롯데 구단은 지난 2년간 양승호 감독이 잘 다듬어 왔다. 첫 해인 2011년에는 시즌 초반 ‘시행착오’를 겪긴 했지만 중반 이후 제자리를 찾았고, 올해는 주전들의 잇단 부상 사태 속에 후반 고비를 용케도 잘 넘겼다. 올 시즌 전 ‘4강에 오르기도 힘겨운 전력’ 이라는 평가를 씻어내고 가을 잔치에 참여한 것만으로도 양승호 감독은 지도력을 잘 발휘했다고 평가해야 마땅하다.
한국시리즈 진출 실패 직후 불거진 퇴진 논란은, 진한 아쉬움 속에서 나온 것이라 할지라도 감독의 목줄을 옥죄고 있는 우리네 야구단들의 행태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에 다름 아니다.
롯데 선수들은 열심히 싸우긴 했지만 아직도, 선수 개인별로 작전 수행능력, 공, 수, 주 3박자를 충분히 갖추지 못했다. 2%가 아니라, 우승 고지에 오르기 위해선 20%가 모자란다. 세기를 가다듬어 정상에 도전할 실력을 갖추기에는 양승호 2년 체제가 짧았다.
/OSEN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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