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리그도 안봤던' 이진화, 3년 만에 '재수 성공'
OSEN 김희선 기자
발행 2012.10.24 07: 00

"재미없어서 안 본다고 했죠. 지금 생각하면 열등감을 인정하기 싫었던 것 같아요".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신인 선수들 사이에서 이진화(21, 수원시청)는 긴장한 얼굴이었다. 원래 하얀 편인 얼굴이 더욱 하얗게 질린 것은 전체 2순위로 자신의 이름이 불렸을 때였다. 도통 실감이 나지 않아 지명이 됐다는 기쁨을 만끽할 수가 없었다.
한국배구연맹(KOVO)은 23일 오전 서울 리베라 호텔 몽블랑홀서 2011-2012시즌 여자 신인선수 드래프트를 개최했다. 총 25명의 선수가 참가한 이번 드래프트에서 '재수생' 이진화는 1라운드 2순위 지명권을 가진 흥국생명에 지명됐다.

3년 넘게 꿈꿔왔던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얼떨떨한 소감을 밝힌 이진화는 긴장한 듯 두 주먹을 꽉 쥐었다. 배구가 끝나는구나 싶었던 3년 전 드래프트가 떠올랐다. 연달아 이름이 불리는 친구들 사이에서 눈물을 꾹 참고 등돌려 떠나야했던 실패의 기억에 이진화는 "내 배구는 여기까지구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배구를 그만둘 수는 없었다. 대학과 실업팀의 권유가 이어졌다. 이진화는 고민 끝에 수원시청을 선택했다. 실업팀에는 프로에서 뛰다 온 언니들도 있었고 프로팀과 연습경기를 할 기회도 많았다. 프로라는 이름 아래 뛰는 것은 아니었지만 '여기까지구나' 싶었던 배구가 여전히 재미있고 즐겁다는 사실만으로도 버틸 수 있었다.
여전히 아쉬움과 씁쓸함은 남아있었다. 그래서일까, 이진화는 "V리그를 보지 않아 가고 싶은 팀이 있었냐는 질문에 대답도 잘 못했다"고 털어놨다. 이진화가 뛰었던 수원시청 훈련장과 수원이 연고지인 현대건설이 사용하는 수원실내체육관은 불과 2분 거리였지만 단체로 갈 때가 아니면 경기를 보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왜 안보냐고 물어보면 재미없어서 안 본다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열등감을 인정하기 싫었던 것 같다"며 쑥스러운 미소를 지은 이진화는 다른 선수들과 달리 늦깎이로 프로에 데뷔하는 만큼 더 멋진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다짐했다.
"실업팀에서 배운 배구 센스를 살려 서브와 리시브를 보완해 더 좋은 선수가 되고 싶다"는 이진화의 각오는 3년의 세월을 거쳐 숙성된만큼 진하고 또 뜻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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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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