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만은 플레이오프를 앞두고 “가장 긴장하는 선수가 저기 있다”고 조인성(37·SK)을 가리켰다. 이 농담을 들은 조인성은 씩 웃었다. 그러나 이내 담담한 표정으로 “정규시즌과 큰 차이가 없다. 긴장도 없다”라고 했다. 그리고 경기장에서 자신의 말을 증명해보였다.
만 37세의 베테랑인 조인성은 10년 동안 가을잔치를 즐기지 못했다. 전 소속팀 LG가 2002년 이후 단 한 번도 포스트시즌에 나서지 못하면서 덩달아 조인성도 기회를 잃었다. 연차는 팀 내에서도 손꼽을 만한 위치지만 포스트시즌 경험만 놓고 보면 젊은 선수들보다 못한 것도 사실이다. 가을 공기가 낯설었다. 박진만의 농담도 그 연장선상에 있었다.
그러나 가장 긴장하는 선수였다던 조인성은 롯데와의 플레이오프를 지배했다. 영양가 만점의 대활약이었다. 타율(.267)이 높은 것은 아니었지만 중요한 순간 폭발하며 팀에서 가장 많은 4타점을 수확했다. 특히 5차전에서는 0-3으로 뒤진 2회 대타로 나서 추격의 2타점 적시타를 터뜨렸다. 이만수 SK 감독이 경기 후 “조인성의 적시타가 없었다면 경기가 어려웠을 것”이라고 했을 정도로 중요한 장면이었다.

조인성의 활약에 힘입어 SK는 6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대다수 선수들에게는 일상일지도 모르지만 조인성에게는 또 한 번의 도전이다. 조인성의 마지막 한국시리즈 출장은 2002년이었다. 자그마치 10년 전이다. 공교롭게도 상대가 같다. 삼성이다. 당시 준플레이오프부터 한국시리즈까지 내달린 LG는 6차전에서 삼성에 대역전극을 허용하며 무릎을 꿇었다. 9회 이승엽의 동점 3점 홈런과 마해영의 끝내기 홈런은 팬들에게 잊히지 않는 장면으로 남아있다.
10년이 지난 일이지만 조인성은 당시를 어제 일처럼 기억한다. 후회 때문이다. 당시 마스크를 쓰고 있었던 조인성은 “(이)승엽이에게는 너무 쉽게 변화구를 던지다 홈런을 맞았다. 반대로 (마)해영이형은 변화구로 유인했어야 했는데 바깥쪽 직구를 던지다 맞았다. 때로는 고집을 부려서라도 투수를 이해시켜야 했는데…”라고 회상했다. 자신이 리드를 좀 더 잘했다면 그런 최악의 결과도 없었을 것이라는 자책감이다. 조인성의 경력에서 사라지지 않는 악몽이다.
그러나 강산이 한 번 바뀐 지금은 다르다. 그 사이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 풍부한 경험과 담력으로 무장했다. 플레이오프 5차전은 그런 조인성의 가치를 ‘재발견’한 무대였다. 제구력이 좋은 채병룡의 장점을 극대화해 팀 역전의 발판을 놨다. 조인성이 요구한 몸쪽 리드에 롯데 타자들은 꼼짝없이 당했다. 분명 10년 전과는 다른 조인성이다. 악몽의 되풀이는 없을 것이라 다짐하며 한국시리즈를 맞이하고 있는 조인성이 10년 전과는 다른 결과를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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