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는 NO!' 박성호, 이제는 첫 태극마크까지 '조준'
OSEN 허종호 기자
발행 2012.10.26 07: 00

맹모단기(孟母斷機, 맹자의 어머니가 베를 끊었다. 학문을 중도에서 그만두면 쓸모가 없다는 뜻)라 했다. 이는 학문에만 쓰여지는 말이 아니다. 어떤 일이든지 중간에 그만두면 쓸모가 없게 된다. 축구도 마찬가지다. 괴로움과 고통에 중간에 포기한다면 그 선수의 축구는 아무에게도 의미 없는 일이 됐을 것이다.
박성호(30, 포항 스틸러스)라는 선수가 있다. 포항 스틸러스의 최전방 원톱을 책임지는 박성호의 이름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이동국(33, 전북 현대)과 같은 유명 스트라이커도 아니다. 프로 데뷔 11년 차이지만 한 시즌 최다득점이 10골을 넘어본 적도 없다. 하지만 박성호는 혹독한 프로 무대에 살아 남았다. 그는 조금씩이나마 성장을 했고, 이제는 포항이라는 K리그 명문의 주전 공격수가 됐다. 박성호가 힘들고 지쳤던 젊은 시절에 축구를 그만뒀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 힘든 시기 이겨낸 공격 본능

박성호는 187cm의 장신이다. 그래서일까?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포스트 플레이를 기대한다. 하지만 그의 장기는 포스트 플레이가 아니다. 신장에서 뿜어나오는 힘이 아니라, 동료와 연계 플레이 같은 섬세함을 추구한다. 섬세함을 추구하는 만큼 성격도 조심스럽다. 스스로 내성적이라고 말하는 박성호는 "심리적인 것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경기는 몸으로 하지만 몸을 움직이는 건 결국 정신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내성적 성격에 팀을 옮길 경우 적응기간이 적지 않게 걸린다는 박성호다. 2006년 부산 아이파크에서도 그랬고, 2008년 대전 시티즌은 물론 2010년 잠시 다녀온 베갈타 센다이(일본)도 적응기간이 필요했다. 당연히 이번 시즌 포항으로 옮긴 직후에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오래 걸렸다. 2월 포항에서의 데뷔전이었던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플레이오프 촌부리전서 골을 넣기는 했지만 박성호 스스로 마음에 들지 않는 경기력이었다. 이후 박성호는 약 5개월 가량 K리그서 공격 포인트를 올리지 못했다.
시즌 초중반 5개월은 박성호에게 말 그대로 최악의 기간이었다. 3월 3일 울산전을 시작으로 7월 22일 인천전까지 17경기 동안 그는 침묵했다. 박성호는 "초반 경기력이 떨어진 후 좀처럼 올라오지 않았다. 동계훈련 때 보인 좋은 경기력이 도저히 안나왔다. 갈수록 부담이 됐다. 비참한 순간을 꼽기에는 너무 많다. 공을 잡는 그 순간에도 홈 관중들의 좋지 않은 반응이 느껴졌다. 골대 앞에만 가면 '에이', '아휴' 같은 탄성이 잇달아 나왔다. 내가 기대에 못 미칠 정도로 실력이 부족한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당시 심정을 전했다.
절망과 비참함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박성호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내가 적응을 하는데 좀 늦은 편이다. 항상 겪었던 일이다. 항상 초반보다는 후반에 좋은 경기력을 보여줬다. 일본에서도 본 모습을 보여주는데 4~5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 때의 경험이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다라는 생각에 버텼다. 지금은 심리적으로도 안정됐고, 가족들도 편안하게 지내서인지 좋다. 경기력이 나쁠 때에는 이사온 집터가 좋지 않아서 그런가라는 생각을 하기까지 했다"며 웃음을 지어 보였다.
적응을 마친 박성호의 최근 경기력은 어떤 국내 공격수보다 위라고 할 수 있다. 19골로 K리그 득점 랭킹 2위에 올라 있는 이동국도 비할 바가 아니다. 박성호는 K리그서 첫 공격 포인트를 올린 7월 25일 강원전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14경기 동안 7골 5도움을 기록했다. FA컵까지 포함하면 8골 5도움이 된다. 그 기간 동안 박성호보다 좋은 공격수는 데얀(14골 1도움)과 몰리나(8골 7도움, 이상 서울) 밖에 없다. 지난 3달 동안은 이동국(6골 1도움)도 박성호에 밀렸을 정도다. 게다가 박성호의 득점이 흔한 페널티킥 골이 없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 자신감과 성인대표팀의 꿈
결과물이 나오는 만큼 자신감도 붙었다. 선수라면 모두가 꿈꾸는 태극마크에도 욕심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많은 선수들이 오고 가는 청소년 대표팀도 밟아보지 못한 박성호로서는 성인대표팀은 말 그대로 꿈의 무대다. 박성호는 "우리 위의 세대가 당시 잘 나간다는 '아테네올림픽 세대'다. 대표팀에 뽑히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기껏해야 김두현과 최성국 정도가 우리 세대서 태극마크를 단 선수들"이라고 떠올렸다.
하지만 박성호가 대표팀에 뽑히지 못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는 단호하게 "운보다는 실력이 없었다. 당시에는 부럽기만 했다. 욕심보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노력을 하는데 집중해야 했다"고 답했다. 실력이 없는 만큼 대표팀의 자리를 꿰차고 싶은 건 기대가 아니라 터무니 없는 욕심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의 생각은 다르다. "지금은 조금 다르다. 시즌 초반에는 생각도 못했지만 경기력이 올라온 지금은 기대를 약간은 하고 있다"며 첫 태극마크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조심스러웠다. 이란과 월드컵 최종예선을 마치고 지난 18일 인천공항으로 입국한 최강희 대표팀 감독이 "현재 대표팀의 스트라이커 자원은 3명뿐"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최강희 감독이 이동국과 박주영, 김신욱을 제외한 다른 선수들은 머릿속에 없다고 한 상황에서 대표팀 발탁에 대한 기대를 하는 것 자체가 무리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성호는 이번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묵묵히 적응을 했던 것처럼 기다릴 뿐이었다. 박성호는 "그래도 K리그서 잘한다면 대표팀에서도 좀 봐주지 않을까 싶다. 물론 다음 대표팀 경기가 있기까지 K리그 경기가 몇 경기 남지 않았지만, 최근 좋은 경기력을 보이는 만큼 최강희 감독님께 어필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신욱이와 비슷한 스타일이지 않냐고 묻는 경우도 있지만 선수라면 자신만의 개성을 모두 갖췄다고 생각한다. 신욱이는 분명 좋은 선수다. 하지만 나도 나만의 득점력과 좋은 경기력을 갖고 있다. 일단 마음을 비우고 경기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 성장하는 30세 공격수
박성호는 30세다. 하지만 아직 성장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프로 데뷔 11년 차의 많은 경험이 그의 성장에 도움이 되고 있다. 박성호는 "완성된 선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지금이 절정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좋다. 하지만 앞으로 더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이 계속 든다. 잠재력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박성호의 말이 틀리다고 할 수 없다.
그가 성장을 하고 있는 만큼 지금까지 이름을 널리 알리지 못했다고 해서 대표팀에 합류하지 못하라는 법도 없다. 실력만 갖추고 있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 프로이고 대표팀이다. 박성호의 30세는 선수 생활의 마지막으로 달려가는 교차점이 아니라, 대표팀 도전에 나서는 나이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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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백승철 기자 baik@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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