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전 ‘나는 가수다’처럼 ‘나는 선발이다’라는 경쟁이 펼쳐졌을 정도다. 물론 선발 보직을 따낸 선수들의 면면은 가려졌으나 투수 개개인이 던질 수 있는 한계 투구수가 늘어난 만큼 선발 후보도 많아졌고 유연한 투수진 운용도 가능하다. 한국시리즈 2연승으로 2년 전 설욕과 함께 2년 연속 제패를 노리는 삼성 라이온즈 투수진의 현재다.
삼성은 지난 24~25일 안방 대구에서 벌어진 SK 와이번스와의 한국시리즈 1,2차전을 모두 3-1, 8-3으로 승리했다. 이 승리에는 연이어 선발로 나섰던 윤성환, 올 시즌 다승왕(17승) 장원삼의 호투가 바탕되어 있었다. 윤성환은 5⅓이닝 4피안타 1실점 비자책으로 선발승을 거뒀고 장원삼도 6이닝 2피안타(1피홈런) 1실점으로 팀의 5부 능선 등정에 공헌했다.
그 뿐만 아니다. 2차전에서 선발 로테이션 한 자리를 맡으며 11승을 거뒀던 브라이언 고든은 여유있는 점수 차로 계투 필승조를 아껴야 했던 순간 장원삼의 바통을 이어받아 7회를 무실점으로 막아냈다. 9회 등판한 좌완 차우찬도 1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며 2차전을 8-3 낙승으로 매조졌다. 여기서 고든과 차우찬이 당초 시즌 개막 전 선발 요원이었음을 떠올려 볼 필요가 있다.

올 시즌 삼성이 우승할 수 있던 이유 중 하나는 10승 투수 4명을 배출한 고른 기량의 안정된 선발진이다. 17승으로 다승왕 타이틀을 따낸 장원삼은 평균자책점 3.55로 이 부문만 따지면 특급 성적은 아니었다. 그러나 매 경기 자기 몫은 해주는 투구로 시즌 초반 한 달을 제외하면 에이스 활약도를 보여줬다. 특히 이전부터 강한 계투진을 갖춘 삼성인 만큼 장원삼은 물론 배영수, 미치 탈보트, 고든이 안정된 투구를 펼치는 선순환 작용이 일어났다.
고든이 선발진 대신 계투로 나선 것은 다른 선발 투수들에 비해 이닝 소화 능력이 다소 아쉬웠기 때문. 그러나 좋은 구위와 커브 구사력, 그리고 롱릴리프로 활용할 수 있는 이닝 소화 능력은 갖췄기 때문에 한국시리즈 계투로 편성될 수 있었다. 올 시즌 6승에 평균자책점 6.02에 그치며 난조를 보였던 차우찬도 기본적으로 적어도 3이닝 이상은 무리없이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선발로 훈련했기 때문이다.
투수 출신인 김진욱 두산 감독은 올 시즌 전 선발 후보를 대량 육성하고자 하면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계투 특화 식으로 투수를 키운다면 그 당사자의 구위나 강점을 최대화 시킬 수는 있어도 만일의 전력 공백에 맞춰 선발로 전향시키기는 어렵다. 맞춰놓은 경기 당 한계 투구수의 제약을 받고 선수의 팔꿈치나 어깨에도 무리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 두산의 셋업맨으로 활약한 홍상삼도 전지훈련에서는 선발 후보였다.
다시 삼성으로 시선을 돌려 그들은 오키나와 전지훈련에서 장원삼-배영수-탈보트-고든-윤성환은 물론 차우찬과 정인욱도 선발 경쟁에 포함시켜 훈련했다. 그 뿐만 아니라 KIA에서 이적해 온 우완 김희걸도 KIA에서는 선발 후보로 훈련했던 투수다. 비록 한국시리즈에서 선발로 뛰지 못하는 투수들이라도 필승 계투조에게 휴식을 제공할 수 있는 롱릴리프로 활용이 가능하다는 장점까지 덤으로 얻은 삼성이다.
선발에서 롱릴리프로 기회를 얻은 고든과 차우찬에 대해 ‘트랜스포머 투수’라는 별명도 주어진 한국시리즈 2차전. 여기에는 ‘나는 선발이다’ 경연을 펼친 삼성의 시즌 전 준비 과정이 확실히 한 몫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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