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구가 잘 안 되어서 몸에 맞는 볼을 두 개나 기록하고 말았네요. 배영섭-박한이 선배에게 죄송할 따름입니다”.
추가 1실점은 아쉬웠다. 그러나 추격조로 분투하면서 팀의 역전승 발판을 만든 활약은 분명 값졌다. 1년 전 방출생에서 당당한 페넌트레이스 준우승팀의 필수 계투 요원으로 활약한 박정배(30, SK 와이번스)의 생애 첫 한국시리즈 활약은 알토란 같다.
박정배는 지난 28일 안방 문학구장에서 벌어진 삼성 라이온즈와의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1-6으로 뒤진 3회초 팀의 세 번째 투수로 등판해 2⅓이닝 2피안타(사구 2개) 1실점을 기록했다. 투구 막판이던 5회초 2사에서 박한이에게 몸에 맞는 볼을 내준 뒤 공주고 후배인 조동찬에게 중견수 키를 넘는 1타점 2루타를 허용하며 송은범과 교대한 것은 아쉬웠으나 기세가 드높던 삼성 타선에 찬물을 끼얹은 투구였다.

별 의미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추격조 박정배의 투구는 뜻 깊었다. 왜냐하면 팀이 6회 역전 6득점을 기록하며 이날 경기를 12-8로 승리했기 때문. 1차적 수훈은 6회 타선 폭발과 몸 상태가 완벽하지 않았던 우완 송은범의 역투였으나 계투 히든카드로 내세웠던 채병룡의 붕괴 후 상대를 막아냈던 박정배의 공로도 무시할 수 없었다.
경기 후 이만수 감독 또한 “최영필과 함께 오늘(28일) 경기에서 잘 던져 준 박정배가 시즌 동안 추격조 및 계투 승리조로 활약하지 않았더라면 우리 팀도 큰일날 뻔 했다. 투수 자원이 예년보다 부족했기 때문이다”라며 박정배의 숨은 공로를 높이 샀다. 2차전에서도 박정배는 막판 1⅓이닝 무실점으로 크게 빛은 나지 않았으나 호투를 펼쳤다.
승리, 홀드 등 그 어떤 기록도 주어지지 않았으나 박정배에게는 한국시리즈 마운드에 서 있는 자체가 행복이다. 지난해까지 두산에 몸담았던 박정배는 이맘때 포스트시즌이 아니라 일본 미야자키 교육리그가 익숙했던 투수였다. 기회가 자주 주어지지 않았던 만큼 교육리그에서부터 150km 이상의 빠른 공을 씽씽 던졌으나 결국 이로 인해 전지훈련 막판에는 페이스가 떨어져 고전했던 박정배는 이제 당당한 페넌트레이스 2위팀의 계투 요원이다.
“저도 저렇게 우승 사진을 찍고 싶어요”. 우천 휴식을 취한 27일 불펜 훈련을 마치고 실내 웨이트 트레이닝을 위해 이동하던 박정배는 구장 복도에 걸린 SK 선수단의 우승 기념 사진을 보며 부러워했다. 이제는 1군에서 공헌도를 보여줄 수 있는 만큼 기왕이면 팀의 더 나은 성적에도 힘을 보태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다.
경기 후 박정배는 “더 이상 실점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제구가 잘 안 되어서 애를 먹었다”라며 쑥스러워한 뒤 오히려 과감한 투구가 주효했다는 이야기를 밝혔다. 이날 박정배는 140km대 후반의 직구를 거침없이 던지며 빛나지 않는 순간에도 자신의 존재감을 보여줬다.
“제구하는 데 애를 먹다가 그냥 ‘칠 테면 쳐 봐라’ 식으로 던진 것이 그나마 잘 되었던 것 같아요. 5회 추가 1실점이 팀에 죄송했고 제구가 되지 않아서 배영섭과 박한이 선배께 몸에 맞는 볼을 내준 것도 굉장히 죄송했습니다. 그래도. 이겨서 너무 좋습니다”.(웃음) 박정배는 분명 당당한 한국시리즈 출전 선수로서 제 가치를 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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