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션 프로그램이 ‘불편한 금요일’을 만든다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2.10.29 15: 20

[김대주 작가의 사심 톡(talk)]  매주 금요일 저녁, 텔레비전에선 자신의 꿈을 좆는 사람들의 절박한 노래가 끊이질 않는다. KBS2의 「내 생에 마지막 오디션」을 시작으로 MBC의 「위대한 탄생 3」, Mnet의「슈퍼스타 K 4」 까지. 저녁 9시쯤 시작한 오디션은 자정을 넘겨 새벽 1시쯤이 돼서야 끝이 난다.
오디션에 나올 수밖에 없었던 참가자들. 각자가 처한 힘든 상황에서도 노래를 하고 싶다는 꿈을 잃지 않고 노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참 매력적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 이야기의 매력이 느껴지기보다 점점 불편해지는 이유는 왜 일까? 예선을 통과하고 본선을 지나 우승자가 나오는 서바이벌의 과정에서 줄어드는 건 출연자들의 수뿐만 아니라 다른 것들도 조금씩 사라지기 때문 아닐까한다.
예선전이 본론이고 곧 결론이다.
‘호감형의 외모를 지닌 한 출연자가 쭈뼛쭈뼛 심사위원 앞에 선다. 그리고 수줍은 듯 시작한 노래. 별 기대 없이 턱을 괴고 앉아 있던 심사위원들의 눈빛이 변하더니 이내 얼굴에 감출 수 없는 감동과 놀라움이 드러난다. 심사위원들은 노래를 마친 출연자에게 찬사와 함께 뜨거운 박수를 보내고 다시 한 번 지원서를 꼼꼼히 보는데… 그때서야 앞에서 멋진 무대를 보여준 저 사람이 힘든 현실을 노래로 이겨내 왔음을 알게 되고 주르륵 눈물을 흘린다.’
이 이야기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입장에서 내가 생각하는 아주 훈훈한 시나리오다. 신기하게도 우리는 실제로 많은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이와 비슷한 장면을 봐 왔다.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들은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인터넷에 이슈검색어로 오르거나 기사화된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이야기는 우리가 본론이라고 생각하는 본선이나 우승자 결정전에선 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한 사람의 성공스토리를 담을 것만 같던 오디션 프로그램은 본선부터는 그냥 긴장이 감도는 서바이벌 노래 경연장으로 바뀐다. 물론 매번 새로운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노력하는 출연자들의 모습과 완벽에 가까운 무대로 재미를 주지만 잊혀져가는 그들의 사연만큼이나 감동도 조금씩 희미해진다고 느끼는 건 나뿐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끊이지 않는 인기투표논란
 난 사실 이러한 논란이 이해되지 않는다. 물론 내가 응원하는 사람이 탈락되면 조금은 서운하겠지만 오디션 프로그램은 ‘최고의 보컬리스트’를 뽑는 자리가 아니고 ‘최고의 스타’를 찾아내는 자리다. 그럼 인기가 많은 사람이 우승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문제는 투표에 참여한 시청자와 그냥 방송만 보는 시청자의 취향이 서로 일치하지 않을 때 발생한다.
 스타를 시청자들이 직접 뽑는 아주 공명정대하고 민주주의적인 방법, 국민 문자투표. 이 방법의 대 전제는 시청자 중 투표에 참여하는 사람들 또한 아주 공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것과는 조금 다르다. 여성출연자보다는 남성출연자가 생존확률이 높고 실력보다는 인기도가 더 많은 표를 불러 모은다. 얼마 전 Mnet의「슈퍼스타 K 4」에서도 TOP 6로 모두 남자출연자들이 남고 심사위원들의 호평을 받은 ‘허니지’가 떨어지고 혹평을 받은 ‘정준영’이 살아남자 시청자 문자투표가 공정치 못하다는 논란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이 논란은 방송을 보는 모든 시청자가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 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인기투표 논란은 앞으로도 쭉 계속 될 거란 거다. 다만 아쉬운 건 이러한 논란은 출연자들을 무대에 집중할 수 없게 하고 시청자들에겐 프로그램에 대한 신뢰도와 충성도를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개성이 사라지는 출연자들
‘좋은 목소리를 갖고 있다.’, ‘선천적으로 리듬감이 좋다.’, ‘멜로디를 갖고 놀 줄 안다.’
오디션 예선 때 마다 심사위원들에게 쉽게 들을 수 있는 말들이다. 아직 완전하진 않지만 잠재능력과 개성이 있어 발전 가능성을 봤다는 것이다. 거칠지만 가치 있는 ‘원석’과 같은 출연자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잠재능력을 키우기는커녕 개성마저 무뎌져서 세공이 잘 못 된 ‘원석’이 되는 경우들을 종종 볼 수 있다.
 보통 기획사에선 가능성이 있는 연습생을 발굴하고 무대에 세우기까지 몇 년을 두고 준비한다. 그러나 오디션 프로그램은 겨우 몇 달의 여유밖엔 없다.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이 짧은 시간 동안 출연자들은 계속 해서 ‘뭔 가를’ 보여줘야 한다. 매 주 새로운 무대를 보여주기 위해선 부족한 실력을 키워야 하는 동시에 자신만의 개성도 부각시켜야 한다. 이런 하드 트레이닝은 음악적 사춘기를 겪고 있는 출연자들에겐 아직 확고하지 않은 그들의 음악세계를 흔들리게 할 수도 있다. 물론 몇몇 출연자는 본인의 개성을 지켜서 우승까지 하기도 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더 많은 출연자가 개성이 뚜렷한 뮤지션에서 그냥 노래 잘하는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슈퍼스타 K」의 성공을 시작으로 수많은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생겨났다. 그리고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실제로 가수의 꿈을 이룬 출연자들도 생겼다. 노래를 계속 하겠다는 꿈이 있다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을 것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들. 그러나 지금의 오디션 프로그램의 출연자들은 일반인 이라기보다는 기회를 잡지 못한 연습생에 가깝다. 팝을 화려한 테크닉으로 부르거나 연주를 하며 자작곡을 부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외모도 실력도 진짜 가수같은 출연자들의 완벽한 무대와 냉혹한 비평 그리고 합격과 탈락 사이를 오고가는 긴장감이 지금의 인기 오디션 프로그램들을 만들었지만 가끔은 예전 ‘강변가요제’나 ‘대학가요제’에서 느껴지던 아마추어의 풋풋함, ‘전국노래자랑’이 주는 편안한 웃음이 조금은 그리워진다.
[방송 작가]osenstar@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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