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도 병인 냥 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고 옛 시인은 노래했지만, 야구에 대한 사랑이 깊어 야구중독에까지 이른 기자가 있다.
그는 프로야구 기사를 쓰기 위해 허구헌날 야근하며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경기의 흐름을 점검하거나 현장에 나가 감독, 코치를 비롯한 선수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새벽에 일어나 박찬호나 김병현의 메이저리그 등판경기도 챙기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는 지겨움을 잊었다. 야구 사랑이 깊었기에….
체육기자를 지낸 고석태(49) 기자가 야구사랑 20년의 뒷얘기를 진솔하게 풀어놓았다. 이름 하여 이라고 했다.

은 그런 심각한 증세를 보였던 저자가 자신과 야구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며 쓴 글이다. 그래서 내용이 담백하다. 사랑을 빙자한 글쓰기가 지닌 한계를 넘어선 글이다. 있는 대로 썼기에 거리낌이 없다. 둥근 것은 둥근 대로 모난 것은 모난 대로 그려냈다. 현장의 충실한 기록이다. 야구, 야구인의 감추어진 얼굴, 속살을 분단장하거나 과대포장하지 않고 그대로 드러냈다. 이를테면 이 책은 군더더기나 쓸 데 없는 미화를 배제한 하드보일드 식 ‘야구 판 증언록’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당연히 그렇게 써야함에도 사실 한국의 여러 상황을 고려하면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기록은 있는 그대로여야 생명력을 지닌다. 은 지난 20년 한국야구의 결정적 장면들의 이면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고 있다. 누군가는 불편하고 인정하고 싶지 않는 대목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사실이다. 직업적 구경꾼인 저자가 훈련된 관찰력과 통찰력으로 기록한 글이다.
그래서 은 상당부분 논란의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그 논란들은 직간접적으로 야구 발전으로 이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국내외 프로야구의 후일담을 담아냈지만, 책에는 ‘예와 이제’를 아우른 역사적인 내용이 담겨 있는 글들도 두루 망라해놓았다. 최동원과 선동렬을 둘러싼 최고투수 논쟁, 선동렬과 박찬호의 우열 가리기 입방아, 이승엽을 축으로 한 최고타자 논란 따위의 호사가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던 흥미로운 얘기와 비운의 주인공 재일교포 장명부의 여인이 전한 진실, ‘박찬호가 왜 박 사장으로 불리는가’, ‘이승엽이 수능에서 떨어진 까닭’ 같은 취재기 등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만한 재미난 글들이 담뿍 실려 있다.
은 야구에 대한 무모한 짝사랑을 깨뜨린다. 이십년 동안 야구를 취재하며 가슴에 쌓아놓았던, 야구 전문기자가 풀어놓는 비화들을 읽는 것은 유쾌한 일이다. 누구보다 야구 열병이 심했던 저자의 ‘깨진 짝사랑’을 따라가다 보면, 야구 제대로 봐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 단계를 지나면 그제야 자신이 진정한 야구팬이 됐음을 깨닫게 하는 책이다. 진정 야구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강권한다.
고석태 기자는 “20년 11개월. 야구기자로서 꼬박 스물 한 시즌을 치러내고 현장을 떠났다. 선수라면 화려한 기록이 남았을 테지만 기자에겐 기사만 남는다.”면서 “예전 기사를 읽다보면 그 기사를 쓰게 된 과정이 새삼 생각난다. 신문에 쓸 수 없었던 뒷얘기가 떠올라 혼자 미소를 짓기도 한다. 그런데 세월이 갈수록 그 재미있는 뒷이야기가 자꾸 가물가물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려 한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그런 뒷얘기를 모아 남기고 싶었다.”고 집필 동기를 밝혔다.
최근 들어 야구인들의 책은 여러 가지 시중에 나왔지만 기자의 냉정한, 그리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현장을 돌아본 책은 드물다. 기자의 관점에서 바라본 은 우리네 세상살이의 뒷모습도 되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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