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다음이 페이스 좋은 (정)근우 형이잖아요. 근우 형에게 더 좋은 찬스를 연결한다는 것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대반격의 시작은 바로 그의 천금 같은 3차전 번트였다. 그럼에도 그는 "주전 형들이 있으니 팀이 필요한 순간 원하는 임무를 성공시키는 데 집중할 뿐이다"라며 겸손해 했다. 그와 함께 기적같은 리버스 스윕을 향한 강한 기대감을 비췄다. 고교 시절 이상적인 타자 유망주로 꼽혔으나 육군 현역 복무로 야구인생의 위기를 맞기도 했던 '오뚝이' 임훈(27, SK 와이번스)이 앞으로도 팀의 찬스 연결에 확실히 힘을 보태겠다고 다짐했다.
2004년 신일고를 졸업하고 SK에 입단한 임훈은 2006시즌 후 경찰청 입대를 꾀했으나 입대 일정이 꼬이는 비운을 맛보았다. 결국 1년을 어이없이 보내고 육군 30사단으로 입대해 훈련 조교로 복무한 임훈은 2010시즌부터 비로소 팀의 1군 전력으로 빛을 내기 시작했다. 지난해 말에는 FA 임경완의 보상선수로 롯데 이적했다가 정대현의 보상선수로 다시 SK에 돌아오는 우여곡절까지 겪었다. 입단 사진 시 점퍼를 입었을 뿐이고 단 20일 간 적을 두었을 뿐이지만 아직도 임훈의 프로필에는 전 소속팀 롯데가 새겨져 있다.

야구인생에 있어 쉽지 않은 경험들을 했던 임훈은 올 시즌 117경기 2할6푼8리 26타점으로 팀에 공헌했다. 데뷔 이래 가장 좋은 성적이며 투지를 앞세운 수비 능력이나 필요한 순간 안타와 작전 수행 능력은 팀의 플레이오프 직행에도 힘을 보탰다. 화려한 스타 플레이어의 활약은 아니더라도 필요한 순간 감초 노릇을 하고 있는 임훈이다.
특히 지난 28일 삼성과의 한국시리즈 3차전은 임훈의 진가가 제대로 나타났던 경기다. 임훈은 5-7로 끌려가던 6회말 무사 2루에서 상대 좌완 권혁의 초구에 번트를 댔다. 푸시 번트였으나 파울 라인에 붙이지 않고 3루수 박석민과 투수 권혁 사이 빈 곳을 겨냥한 빠르고 낮은 번트였다. 권혁이 이를 잡기 위해 달려들었으나 번트 타구는 그라운드에 굴렀고 선행 주자 박진만은 물론 자신도 1루로 살아나간 번트 안타다. 이를 시발점으로 SK는 역전 6득점하며 12-8 역전승을 거뒀다.
팀의 반격 승리 발판을 마련했던 임훈은 어깨를 으쓱하기보다 팀을 먼저 생각했다. "세게 번트를 보내면 박진만 선배의 진루도 이끌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번트 타구를 보고 '잘 하면 나도 살 수 있겠구나' 싶었다"라고 밝힌 임훈은 "삼성 불펜이 강하지만 특히 셋업맨 안지만의 조기 투입을 이끌고 그 투수를 우리가 이겼다는 점에서 단순한 1승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고 생각한다"라며 기뻐했다.
"1-6으로 끌려갈 때도 우리가 한 점 한 점 추격하면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한국시리즈가 최대 7차전까지 있는 데 그 중에서 우리가 3차전을 그렇게 쫓아가서 뒤집었다는 것이 정말 좋았습니다".
충분히 좋은 선수지만 코너 외야수인 임훈은 조동화, 박재상 등 선배들에 비해 큰 경기 경험이 적은 편이다. 그만큼 임훈은 선발 라인업에 들겠다는 막연한 욕심보다 팀에서 필요로 하는 순간에 맞춰 자기 감각을 이어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을 더욱 중시했다.
"동화 형, 재상이 형 둘 다 워낙 큰 경기 경험이 많은 형들이잖아요. 저는 그만큼 경기 전과 경기 중 덕아웃에서 준비하고 집중을 많이 해야 합니다. 3,4차전 선발 라인업으로 이름을 올렸습니다만 제 임무는 해결사 역할이 아니라 1번 타자인 근우 형에게 좋은 찬스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제가 한 경기에 5번 나가서 모두 삼진을 당하며 부진하더라도 팀이 이겼으면 좋겠어요".
주전급 '슈퍼 서브'가 없는 팀은 강팀이라고 볼 수 없다. 기존 주전 선수가 부진하더라도 그에 필적하는 기량과 경기력의 선수가 전력 공백을 메운다면 누수는 꿈도 꿀 수 없기 때문이다. 자기 임무를 확실히 알고 열심히 훈련하는 '슈퍼 서브' 임훈을 보유한 SK는 분명 강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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