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리즈 흐름을 잡은 쪽은 삼성이었다.
삼성은 지난 10월 31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SK와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철통수비를 펼치며 2-1로 승리, 2연패 후 천금의 1승과 함께 시리즈 전적 3승 2패를 만들었다.
완벽에 가까운 내야진의 움직임과 되살아난 마운드가 조화를 이뤄 만들어낸 승리였다. 3루 박석민의 빠른 번트 대처와 신예포스 이지영의 더블스틸 저지, 고참 1루수 이승엽의 에러를 막는 다이빙 캐치와 빈틈을 허용치 않은 홈송구 등 이날 삼성 내야진이 보여준 강한 진념은 SK에 득점에 대한 두려움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4회초 1점을 허용하고 난 무사 1, 2루에서 박석민은 박정권의 번트를 예측해 포구 후 주저하지 않고 3루에 송구, 2루 주자 최정을 아웃시켰다. 이어 다음 타자 김강민의 유격수 땅볼에 1루 주자 박정권을 2루서 포스아웃, 더블플레이를 위해 2루수 조동찬이 던진 1루 송구가 실책성이 됐지만 이승엽이 이를 몸을 던지며 받았다. 다이빙 캐치 후 이승엽은 3루 주자 이호준을 의식해 곧바로 홈송구까지 해 이호준을 3루에 묶었다. 2사 1, 3루서 SK는 추가점을 위해 더블스틸을 감행했으나 포수 이지영이 이를 완벽하게 간파, 2루 송구 페이크 후 3루 송구로 3루 주자 이호준을 런다운으로 잡았다.
이처럼 삼성 내야진이 4회초에 보여준 철벽같은 수비력은 이날 경기의 주도권을 가져오기에 충분했다. 7회초 선두타자 이호준의 2루타와 박정권이 수비 시프트에 의한 3루수 야수선택으로 무사 1, 2루. 흐름이 묘하게 흘러갔으나 위기서 삼성 내야진의 치밀함이 다시 나왔다. 내야진을 앞으로 당겼는데 1, 2루간을 비워놓아 김강민이 번트 앤드 슬래시로 1, 2루간을 밀어치도록 의도했고 투수 안지만은 밀어칠 수 없는 코스의 몸쪽 직구를 구사해 김강민을 궁지로 몰아넣었다. 결국 김강민은 볼카운트 1B2S으로 몰렸고 4구 포크볼에 헛스윙으로 물러났다.
5차전 패배 후 SK 이만수 감독은 “볼 다음에 페이크 번트 앤 슬래시 사인을 냈는데 실패했다. 그 다음에는 번트 사인을 냈는데 김강민이 내야수들의 압박수비를 보고 강공으로 전환했다”고 7회초 상황을 설명했다. 결론적으로 당시 김강민은 삼성 내야진에 과민반응했고 안지만과의 승부도 놓친 격이 됐다.
내야진과 투수의 절묘한 하모니로 무사 1, 2루를 2번이나 넘긴 삼성은 9회초 무사 3루로 마지막 위기에 직면했다. 1점차 리드서 무사 3루는 상대적으로 수비측이 쫓기기 쉽다. 그러나 이미 SK는 삼성 수비와 마무리 오승환에게 부담을 안은 채 얼어있었고 더 이상 작전을 시도하지 못했다.
무사 3루서 이호준의 유격수 땅볼에 3루 주자 최정은 그저 3루만 지킬 뿐 홈을 향한 스킵 동작조차 취하지 않았다. 타구가 2루 베이스 방향이었기 때문에 유격수 김상수가 최정의 홈을 향하는 페이크 동작에 시선을 완전히 빼앗겼다면 타자주자 이호준이 1루에서 살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최정은 가만히 3루 베이스만 밟고 있었다. 그리고 두 타석 연속으로 1, 3루서를 맞이한 김강민은 스퀴즈 번트 동작도 없이 헛스윙 삼진, 박진만도 스탠딩 삼진으로 경기가 마무리됐다.
이 감독은 스퀴즈 번트 모션을 취하지도 않은 부분에 대해 “오승환의 공이 빠르고 내야수가 전진수비를 해 스퀴즈를 댄다는 것이 위험하다. 상대가 전진수비를 했기 때문에 강하게만 굴려줘도 빠질 확률이 높았다”고 설명했다. 즉, 앞서 겪은 삼성 수비에 벤치까지 작전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움츠려들었다는 뜻이다.
삼성은 지난 3, 4차전에서 수비 실책 4개를 범했고 실책 1개 만을 기록한 SK에 2연패했다. 4연승 전망까지 나왔다가 인천을 거치면서 시리즈는 원점으로 돌아왔다. 그만큼 5차전 분위기 역시 SK가 우세할 것 같았다. 하지만 삼성은 하루 휴식 후 완벽하게 본연의 모습을 되찾았고 수비로 SK를 패닉에 빠뜨렸다. 반면 SK는 3회말 수비서 우익수 임훈이 우전안타 처리 과정에서 에러를 범하고 박진만이 포구 후 글러브에서 공을 한 번에 빼지 못하며 실점했다. 이제 삼성은 남은 2경기서 1승 만 하면 통산 6번째로 정상을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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