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승2패로 위기에 몰렸던 지난 롯데와의 플레이오프 4차전. 주장 박정권은 이 말을 했다. 2패로 역시 분위기가 좋지 않았던 한국시리즈 3차전을 앞두고도 정근우가 똑같은 말을 했다. 모두 체념조였지만 그 행간에서는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그 말은 바로 “안 되면 어쩔 수 없고”였다.
SK는 2007년부터 6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이라는 대업을 세웠다. 누구보다도 가을 야구 경험이 풍부하다. 물론 항상 환호했던 것은 아니었다. 지난 5년 동안 3번의 우승을 차지했지만 2번의 준우승도 있었다. 좋은 기억과 쓰라린 기억을 모두 가지고 있다. 그 경험을 통해 SK 선수들은 하나의 교훈을 얻었다. “일단 최선을 다하면서 결과를 기다린다”라는 평범한 진리다.
이런 분위기는 위기 때마다 SK 선수단을 다잡았다. 능력 이상의 것을 기대하기 보다는 가진 기량만 제대로 발휘하자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올해 포스트시즌에서도 마찬가지다. 한국시리즈 1·2차전에서 모두 진 후 SK 선수들은 “욕심이 많았다”라고 자책했다. 한국시리즈라는 분위기에 취해 평정심을 잃었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왔다.

그러면서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 좀 더 침착해졌고 좀 더 위기에 강해졌다. 요행을 바라기보다는 각자 자신의 몫에 충실했다. 번트와 수비 등 기초적인 부분부터 다잡았다. 이런 SK의 안정되고 집요한 야구에 삼성이 먼저 무너졌다. 특정 선수에 의존하기보다는 구성원들의 힘을 모아 최대한의 힘을 내는 SK 특유의 야구가 살아났다. 결과는 2연승이었다.
SK는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졌다. 사실 아쉬움이 많이 남는 결과였다. 3·4차전처럼 선수들이 냉정함을 유지했다면 잡을 수도 있는 경기였다. 그러나 초심을 잃은 플레이가 속출했다. 임훈은 실책을 저질렀고 박진만은 과감하지 못했다. 이호준의 주루사, 몇 차례의 작전 실패 등에서는 조급함이 엿보였다. SK의 야구가 아닌 것 같았다. 결국 승자는 ‘기본’에 좀 더 충실했던 삼성이었다.
이제 SK는 벼랑 끝에 몰렸다. 선수단도 심리적으로 쫓기는 상황에 이르렀다. 하지만 시리즈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역전 우승의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 이런 상황에서 SK의 최대 관건은 초심을 되찾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주목받는 말이 “안 되는 어쩔 수 없고”다. 최선을 다했는데도 진다면 그건 SK의 잘못이 아닌 삼성의 강인함 때문이다. 이를 나무랄 팬들은 없다. SK가 초심을 되찾고 한국시리즈를 최종전으로 끌고 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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