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던질 수 있잖아요. 그 자체에 감사하고 행복해하자는 생각을 했어요. 내년을 생각해서 몸을 뺀다면 그건 너무 이기적인 일입니다”.
3년 전 엔트리에 포함되지 못한 채 뒷켠에서 경기를 지켜보다 분함을 이기지 못했던 기억. 그 기억을 되돌아보면서 에이스는 되풀이 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보였다. 그러나 그의 바람과는 반대로 팀은 시즌 마지막 경기를 완패하며 쓰러졌다. SK 와이번스의 좌완 에이스 김광현(24)의 바람은 안타까운 외침이 되고 말았다.
SK는 1일 잠실구장에서 벌어진 삼성 라이온즈와의 6차전에서 4회 집중 6실점하며 0-7로 완패했다. 시리즈 전적 2승 4패. SK는 지난해 아픔을 앙갚음하지 못한 채 2년 연속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2연패 후 2연승으로 기사회생했던 것이 불과 사흘 전인 것을 떠올리면 더욱 안타까운 6차전이었다.

특히 4차전 5이닝 1실점 호투로 선발승을 따냈던 에이스 김광현에게는 더욱 아쉬운 시리즈가 되었다. 2연패와 2연승, 그리고 5차전 패배로 수세에 몰린 2009년 KIA와의 한국시리즈를 복기한 김광현은 자신의 엔트리 결장 속 3승 4패 7차전까지 끌고 갔던 팀을 떠올렸다.
“기회조차 없었던 시리즈였지요. 잠실구장까지 와서 덕아웃 뒤에서 경기를 지켜봤던 기억이 나네요. 정말 힘들게 끌고 와서 7차전 5-1까지 리드했는데 우리가 5-5 동점을 허용한 거에요. 그 순간 경기를 보기 싫어져서 그 곳을 떠났어요. 특히 그 시즌 제가 KIA에 강했는데 기회조차 못 얻었으니 너무 아쉬웠습니다”.
2009시즌 김광현은 페넌트레이스에서 21경기 12승 2패 평균자책점 2.80으로 에이스 다운 활약을 펼쳤다. 그러나 시즌 막판 팔꿈치 부상으로 인해 전열 이탈했고 두산과의 플레이오프는 물론 KIA와의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들지 못하며 주변인으로서 팀의 눈물겨운 사투를 보았던 김광현이다.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 지 이야기를 들으며 짐작이 갔다.
“그래도 요즘은 잠을 자려다가도 그런 생각을 해요. ‘지금은 내가 던지고 있다는 것. 그 자체에 감사하고 행복해 하자’라고요”. 3년 전에 비해 지금은 엔트리에 있는 데다 귀중한 4차전 승리를 따낸 만큼 엄청난 도움이 되고 있는 것이 아닌지 묻자 오히려 김광현은 팀에 미안해 했다.
“아니에요. 제가 더 팀에 도움이 되었어야지요. 제가 6회 강판하면서 (송)은범이 형부터 계투 요원 선배들이 차례로 등판했잖아요. 제가 최대한 이닝을 오래 이끌고 가능하다면 완투도 했어야 했는데. 오히려 그 점을 더 반성했습니다”.
그와 함께 김광현은 팀의 투수진 총동원령에 대해 자신도 팀원으로서 따르겠다는 뜻을 밝혔다. 올해 김광현은 초반 투구 밸런스 문제 등으로 고역을 치렀고 시즌 막판에도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아쉬움을 남겼다. 그러나 김광현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의 왼팔이 아니라 오로지 팀이었다.
“제 자신을 위해 몸을 사리고 팀이 위급한 순간 나서지 않는다는 것은 정말 이기적인 일이에요. 팀이 우선이잖아요. 가뜩이나 1,2차전 완패 후 SK 야구가 싱겁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는데. 그럼 우리가 더 잘해서 그 평가를 무색하게 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저희에게 힘을 실어주세요. 꼭 이겨서 7차전까지 끌고 갈 겁니다”. 아쉽게도 팀의 6차전 패배로 인해 김광현의 2012시즌은 그대로 끝이 났다.
올해 마지막 경기에서 분투를 보여주지 못한 김광현. 그러나 김광현은 한때 류현진(한화)과 함께 국내 최고 좌완으로 꼽혔고 국가대표로서 ‘일본 킬러’로 맹활약 한 한국 야구의 현재이자 미래이다. 아쉽게 팀의 준우승을 바라봐야 했던 김광현의 야구 인생은 아직도 훨씬 많은 날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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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민경훈 기자 rumi@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