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조의 저력은 남아 있었다. 모두가 어렵다고 생각했을 때 그 저력은 요소요소 빛났다. 6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의 쾌거도 그렇게 이뤄졌다. 그러나 한계도 확인한 시즌이었다. SK가 희망과 보완점을 모두 남기며 2012년을 마쳤다.
SK는 1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삼성과의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0-7로 졌다.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준우승에 머무는 순간이었다. 2패 뒤 2연승을 거두며 시리즈를 원점으로 돌렸으나 승부를 뒤집는 데는 실패했다. 온전하지 않은 선수들의 몸 상태를 추슬러 마지막까지 투혼을 불살랐지만 전력 차이를 넘어서기는 역부족이었다.
▲ 다사다난했던 정규시즌

SK의 정규시즌은 다사다난했다. 2007년 이후 가장 심한 널뛰기였다. SK는 시즌 초반 순항했다. 줄곧 선두권을 지켰다. 지난해 챔피언 삼성의 추락, 일대혼전이 벌어진 진흙탕 싸움에서 높은 순위를 가장 안정적으로 유지한 팀이었다. 그러나 부상자들에 발목을 잡혔다. 특히 마운드에 부상 이탈이 도드라지며 시즌 중반 어려운 시기를 겪었다. 에이스 김광현을 비롯, 마리오 송은범 등이 차례로 선발 로테이션을 이탈하며 팀이 급격하게 흔들렸다.
특히 7월에는 2006년 이후 처음으로 8연패에 빠지며 6위까지 추락했다. 올 시즌을 통틀어 가장 큰 위기였다. 7월부터 스퍼트를 올려 4강 티켓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겠다는 팀의 계획도 산산조각났다. 윤희상을 제외하면 선발 로테이션을 제대로 지키는 선수가 없었고 그동안 팀을 이끌었던 주축 야수들은 극심한 타격 슬럼프에 시달렸다.
하지만 SK의 저력은 그때부터 빛나기 시작했다. 특출한 개인성적을 거둔 선수는 없었지만 팀 전체의 힘으로 반등의 계기를 만들었다. 마운드에서는 박희수 정우람이 최후의 보루가 됐고 타선에서는 회춘한 이호준과 최정이 고군분투했다. 이렇게 가까스로 버티는 사이 부상병들이 귀환하며 팀 전력을 살찌웠다. 김광현 송은범의 복귀와 채병룡의 전력 가세로 선발진이 안정되면서 SK는 상승 동력을 얻었다.
결국 서서히 찬바람이 불기 시작한 9월 SK는 폭발적인 스퍼트로 2위 자리를 탈환했다. 안정된 선발진과 든든한 계투진, 그리고 타선의 짜임새까지 살아났다. 그 결과 막판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였던 롯데·두산과의 2위 싸움을 조기에 종결시킬 수 있었다. 왕조의 저력이었다.

▲ 저력만으로는 부족했다
포스트시즌을 앞둔 SK에는 자신감이 있었다. 우선 지난해보다는 사정이 훨씬 나았다. SK는 지난해 준플레이오프부터 시작해 한국시리즈까지 올랐다. 체력저하가 극심해 정작 한국시리즈에서는 힘을 쓰지 못했다. 그에 비하면 투수 자원이 상대적으로 풍부하고 플레이오프부터 시작하는 올 시즌은 승산이 높아 보였다. 2년 만의 한국시리즈 우승의 꿈도 영글어갔다.
플레이오프에서는 준플레이오프를 통과해 한창 기세가 오른 롯데를 3승2패로 꺾었다. 1승2패의 탈락 위기에 몰렸으나 SK는 4·5차전을 내리 잡으며 6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의 대업을 달성했다. 특히 0-3의 열세를 뒤집은 5차전은 SK가 그간 쌓아온 저력을 유감없이 볼 수 있었던 한 판이었다.
그러나 한국시리즈 상대인 삼성은 강했다. 저력만으로 넘어설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대구에서 힘없이 1·2차전을 내준 SK는 3차전 대역전승을 발판 삼아 2연승을 기록했으나 그것이 저력의 마지막이었다. 5차전에서는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1-2로 졌고 벼랑 끝에 몰린 6차전에서는 삼성 마운드를 공략하지 못하고 허무하게 무너졌다. 하극상을 꿈꿨지만 그러기에는 힘이 없었다.
아쉬움이 남는 한국시리즈였다. 그 중 시리즈의 분수령이 됐던 5차전이 그랬다. SK는 폭투와 실책으로 2점을 헌납했다. 반면 4·7·9회 추가득점의 기회는 번번이 날렸다. 특히 1-2로 뒤진 9회 삼성 마무리 오승환을 상대로 얻은 무사 3루의 황금기회를 놓친 것이 두고두고 뼈아팠다. 그 마지막 기회를 살리지 못한 SK에 삼성은 더 이상의 빈틈을 허용하지 않았다.

▲ SK 야구, 과도기에 있나?
김성근 전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2007년부터 SK는 ‘스몰볼’의 대명사로 이름을 날렸다. 선발 투수의 몫이나 장타력을 중시하기보다는 적시에 흐름을 끊는 투수교체와 타선의 짜임새 있는 연결을 통해 승리를 쟁취하곤 했다. 일각에서는 “재미가 없다”라는 시선도 있었으나 성적은 확실했다. SK는 2007년 이후 한국시리즈 3회 우승을 차지하며 프로야구 최강팀으로 군림했다.
그러나 올 시즌에는 팀 스타일의 변화가 엿보였다. 지난해 중반 감독대행을 거쳐 올 시즌 정식감독으로 취임한 이만수 감독은 전과는 다른 SK의 색깔을 추구했다. 좀 더 선이 굵은 야구를 SK에 이식하려 했다. 이는 팀 홈런 1위 등 몇 가지 지표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그러나 SK 특유의 세밀함과 작전야구가 무뎌졌다는 비난에서는 자유롭지 못했다. 한국시리즈에서 고비를 넘지 못한 것도 이와 연관이 있다는 지적이다.
때문에 다음 시즌 SK의 관건은 이 감독의 색깔이 기존 SK의 색과 얼마나 조화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2위도 결코 나쁜 성적이 아니다. 기존의 세밀함과 이 감독의 화끈함이 절충을 이룰 경우 SK는 새로운 색깔과 함께 좀 더 강해질 수 있는 여지를 가지고 있는 팀이다. 그러나 절충에 실패할 경우 과도기적 모습이 계속 남을 수 있다. 과도기가 길어진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든 바람직하지 않다. 2012년이 SK에 남긴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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