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는 리그에서 가장 풍족한 왼손투수를 보유한 SK였다. 그러나 이제는 품귀현상이다. 게다가 상황은 더 좋지 않게 흘러가고 있다. 대비책 마련이 시급한 때다.
SK는 2012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에 무릎을 꿇고 2년 연속 준우승에 머물렀다. 패인은 여러 가지다. 그 중 하나가 삼성의 좌타 라인을 적절하게 공략하지 못한 것이었다. 마지막 경기였던 6차전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삼성은 2번부터 5번까지를 좌타자로 도배했다. 정형식 이승엽 최형우 박한이로 이어지는 삼성의 좌타 라인은 때로는 정교함으로, 때로는 힘으로 SK 마운드를 윽박질렀다.
물론 이는 부진했던 박석민을 6번으로 내리면서 생긴 현상이기도 하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SK 마운드에 왼손투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사정을 십분 이용한 전술이기도 했다. 실제 한국시리즈에 나선 SK의 투수 12명 중 왼손은 김광현 박희수 정우람 뿐이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선수들이기는 하지만 쓰임새가 확실하다는 한계가 있었다. 김광현은 선발이고 필승조 박희수와 정우람은 경기 막판에 나서는 선수들이다. 당겨쓰기는 무리가 있었다.

결국 SK는 삼성의 흐름을 적시에 끊을 수 있는 좌완 스페셜 리스트 없이 시리즈를 치렀다. 2차전 최형우의 만루 홈런, 6차전 이승엽의 싹쓸이 3루타 등 승부를 결정지은 장면에서 원 포인트 투입은 상상도 못했다. 좌타자가 왼손투수에게 꼭 약한 것은 아니지만 다양성과 흐름의 제어 측면에서 SK는 마땅한 카드가 없었다.
불과 1~2년 전까지만 해도 양상은 반대였다. SK는 왼손투수들의 천국이었다. 정우람 이승호 전병두 고효준 등이 벌떼처럼 나서 상대 공격흐름을 끊곤 했다. 그러나 올 시즌은 사정이 달랐다. 이승호는 FA로 이적했고 고효준은 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라졌다. 전병두도 수술대에 올라 한 시즌을 통째로 날렸다. 김태훈 등 젊은 선수들은 성장이 더뎠다. 그 결과는 왼손기근으로 이어졌다.
내년에는 상황이 더 좋지 않다. 마무리 정우람은 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잠시 팀을 떠날 예정이다. 박희수라는 든든한 마무리감이 있지만 그 전에 나설 수 있는 선수들이 없다. 재활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전병두는 복귀 시점 자체가 미정이다. 기대를 걸고는 있지만 확실한 보장이 어렵다. 강영식(롯데) 마일영(한화) 등 FA 시장에 나오는 선수들에 눈독을 들일 수 있지만 이 역시 장담할 수는 없는 부분이다.
김태훈 허준혁 등의 젊은 선수들은 아직 1군에서 필승조 몫을 하기에는 기량과 경험 모두 다소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올 시즌에도 뚜렷한 한계를 드러내며 자신의 자리를 만들지 못했다. 한편으로는 2군 전체로 시선을 넓혀도 왼손투수가 많지 않은 팀이 SK다.
이만수 SK 감독은 이른바 불펜의 ‘좌우놀이’를 선호하지 않는다. “상대 타자를 보는 것보다는 우리 투수의 능력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지론 때문이다. 구위에 힘이 있다면 좌우를 가리지 않고 맡겨 놓는 경향이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지나친 좌우 불균형은 불펜 운영을 어렵게 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 왼손의 천국이었던 SK가 그 명성을 되찾을 수 있을까. 이는 내년 SK 불펜 위력을 좌우하는 변수가 될 것이 확실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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