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하지 않기로 유명한 에스티벤(30, 울산 현대)이 축구 인생에서 최고의 화려함을 원하고 있다.
에스티벤을 표현하는 단어는 거화취실(去華就實)이다. 화려함을 버리고 실속을 추구한다는 뜻이다. 축구에서 화려함이란 골과 어시스트 등과 같이 기록에 남는 것들이다. 하지만 에스티벤은 그런 기록이 없다. 그럼에도 에스티벤이라는 한 선수는 울산에 있어 절대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2010년 울산에 입단한 에스티벤은 K리그 통산 103경기에 출전했다. 매 시즌 30경기 이상을 소화했다는 것은 주축 선수라는 뜻이다. 하지만 에스티벤의 기록은 출장수에서 그친다. 골과 어시스트는 K리그 데뷔 첫 해 남긴 1골 1도움이 전부다.

에스티벤의 진가는 골과 도움으로 이루어진 공격 포인트가 아니다. 그의 포지션이 수비형 미드필더인 만큼 평가의 기준 자체가 다른 것. 울산이 '철퇴축구'를 구사할 수 있게 하는 중원에서의 엄청난 장악력이 에스티벤의 장기다. 울산의 역습은 에스티벤의 공격 차단으로부터 시작된다. 특히 상대의 패스 길목을 정확히 짚어 차단하는 능력은 탈 K리그급이라고 할 수 있다.
약점도 있다. 공격 전개 능력이 대표적이다. 패스 차단 이후 빠르고 칼날 같은 패스가 이어지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평균 이상의 플레이는 한다. 지난 3월 16일 에스티벤의 공격 전개 능력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던 신태용 성남 감독은 에스티벤의 패스 차단에 이은 빠른 공격 전개에 당해 0-3으로 대패를 당하기도 했다. 당시 에스티벤은 평소와 다르게 과감하고 정확한 슈팅으로 성남의 간담을 서늘케 하기도 했다.
자신의 수비 능력에 대해 혼자의 힘만으로는 패스를 차단할 수 없다며 동료들에게 공을 돌린 에스티벤은 "특별한 능력이 아니라 경험과 직감에서 나오는 것"이라며 "공격 전개가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듣지만 그다지 화가 나지 않는다. 사실인 만큼 나도 인정하겠다. 하지만 공격이 잘될 때가 있고, 안될 때도 있다고 생각한다. 항상 최선을 다하는 것이 목표일 뿐이다"고 덧붙였다.
평소 화려한 플레이에 욕심이 없는 에스티벤이지만 이번 만큼은 다른 화려함을 추구하고 있다. 오는 10일 알 아흘리(사우디아라비아)와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승리해 우승컵에 입을 맞추고 싶어하고 있는 것. 특히 올해로 울산과 계약이 만료되는 만큼 울산에 사상 첫 챔피언스리그 우승이라는 화려한 영광을 안기고 싶다는 뜻이기도 했다.

에스티벤은 "지난해에는 아쉽게 K리그서 준우승을 하고 말았다. 하지만 이번에 기회가 왔다. 챔피언스리그서 우승을 차지해 만회하고 싶다"면서 "우승컵을 가져와야 마음 편하게 팀을 떠날 수 있을 것 같다"며 우승에 대한 동기부여도 되어 있다고 밝혔다.
물론 울산을 떠난다는 뜻은 아니다. 에스티벤은 "지금은 앞 날이 중요하지 않다. 카타르로 가고 싶은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계약기간 동안 울산을 우승으로 이끌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다"며 챔피언스리그 우승 외에는 아무 것도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에스티벤의 머릿속은 오로지 '우승'이라는 한 단어로 가득 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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