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그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신고선수 테스트를 받던 철저한 무명이었다.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1년 사이에 모든 것이 바뀌었다. 이제는 이름 석 자만 대도 모든 프로야구 팬들이 아는 유명선수로 발돋움했다. 그리고 한 번밖에 기회가 없다는 신인왕까지 따냈다. 서건창(23·넥센)의 감동적인 역전 홈런이 프로야구에 한줄기 희망을 던지고 있다.
서건창은 5일 열린 ‘2012 팔도프로야구 최우수신인선수’ 시상식에서 신인왕의 영예를 안았다. 이지영(삼성) 박지훈(KIA) 최성훈(LG)이라는 경쟁자들을 여유 있게 따돌렸다. 예정된 수상이기도 하다. 서건창은 올 시즌 127경기에 나가 타율 2할6푼6리, 115안타 39도루로 팀 상위타선을 이끌었다. 신인의 성적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다. 눈물 젖은 빵을 씹었던 그의 과거를 생각하면 올 시즌의 재발견이라 할 만하다.
▲ 세 번의 실패, 야구 그만둘 뻔하다

뜯어보면 볼수록 감동적인 이야기다. 광주일고 출신인 서건창은 고교 시절부터 잠재력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프로 지명을 받지 못했다. 서건창은 아직도 자신이 지명 받지 못한 이유를 모른다. 첫 번째 실패였다. 그래도 자신감이 있었다. 명문 고려대에서 제의가 왔지만 프로에서도 충분히 통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신고선수 테스트도 마다하지 않았다. 2008년 LG 입단도 그렇게 이뤄졌다.
그러나 부상으로 기회가 날아갔다. 원래부터 좋지 않았던 팔꿈치가 서건창의 앞길을 가로 막았다. 수술대에 올랐고 회복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더군다나 그는 방출에 별다른 부담이 없는 신고선수였다. 계약금도 없었고 애당초 기대치도 낮았다. 결국 2009년 8월 방출됐다. 두 번째 실패였다. 첫 번째 실패 때보다 상황은 더 바닥에 가까워졌다.
군 복무를 마치기 위해 경찰청에 지원했다. 군 복무를 하면서 야구를 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러나 또 떨어졌다. 세 번째 실패였다. 갈 곳이 없어진 서건창은 결국 현역병으로 입대했다. 2년 동안 방망이 한 번 시원스레 돌려보지 못했다. 방망이 대신 삽을 들었고 공 대신 애꿎은 돌만 던졌다. 그렇게 서건창의 야구 인생은 끝나는 듯 했다.
▲ 간절히 원하면 이뤄진다
누구나 끝났다고 생각했다.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할 수 있는 게 야구밖에 없었다. TV속에서 환호하는 동기들과 친구들의 모습도 자극이 됐다. “딱 한 번만 더 해보자”라고 스스로를 다잡았다. 그렇게 NC 입단 테스트를 준비했다. 그러나 그 때 넥센의 소식이 들려왔다. 일정상 더 빨랐던 넥센의 테스트에 주저없이 지원했다. 꼭 합격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없었다. 그저 그동안 하지 못했던 야구를 할 수 있다는 자체가 좋았다. 죽어라 뛰었고 결과는 합격이었다.
가지고 있는 재능과 특유의 성실함은 서건창이라는 보석을 빚어냈다. 시즌 중반 페이스가 다소 처지기는 했지만 신인이라는 특성을 감안하면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다. 오히려 풀타임을 뛰어봤다는 것이 앞으로의 성장에 큰 도움이 될 만하다. 게다가 한 해 성적에 들뜰 서건창도 아니다. 꽤 오랜 기간 야구를 쉰 선수다. 여전히 야구에 목이 말라있다. 가슴 속에 똘똘 뭉친 절박함은 오늘도 서건창을 채찍질하고 있다.
서건창은 ‘간절히 바라면 반드시 이뤄진다’라는 말에 대해 “무조건 믿는다”라고 했다. 추상적인 믿음이 아닌 경험에서 나오는 믿음이다. 군 복무 시절 하루에도 몇 번씩 그렸던 프로의 꿈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이런 서건창의 성공이 프로야구판에 주는 메시지도 가볍지 않다. 이제 서건창은 3년 전 그와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는 많은 선수들에게 하나의 희망이 되고 있다. 신인왕 트로피를 품에 안은 서건창의 모습이 유난히 빛나 보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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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선 기자 sunda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