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기는 사람을 따라갈 수 없다고 했던가? 연기를 한지 십수년이 지났건만 그는 아직도 배우라는 직업에 열정을 가지고, 그것을 오롯이 즐기는 사람처럼 보였다.
정재영이 자신의 32번째 영화 ‘내가 살인범이다’를 들고 다시 관객들 앞에 선다. 이번 영화에서 그는 공소시효가 지난 살인범을 어떻게든 잡아넣고 싶어 하는 형사 역을 맡았다.
그 동안 많은 영화를 통해 액션을 선보였던 그지만, 이번 작품의 액션은 특히나 힘들었다고 밝혔다.

“그동안 액션신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영화 ‘피도 눈물도 없이’가 가장 힘들었다고 이야기했다. 나 자신도 더 이상 힘든 액션은 없을 거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이번 작품을 끝내고 나니 생각이 바뀌었다. 이번 작품이 가장 힘들었던 액션 영화로 기억될 것 같다.”
이렇게 힘든 데도 불구하고 그는 아직도 배우를 하고 있다. 그는 왜 세상에 하고 많은 직업 중에 배우를 하는 걸까? 그리고 이 직업을 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던 순간은 언제일까? 어쩌면 신인 배우에게나 해야할 질문이었지만, 그가 이 일에 열정을 가지고 있는 이유가 문득 궁금해졌다.
“사실 뭐를 하든 쉽게 질리는 스타일이다. 하지만 유일하게 질리지 않고 있는 것이 연기다. 작품이 새롭게 시작될 때마다 새로운 환경, 사람들을 만난다. 그리고 매 작품마다 어떻게 적응할까 고민을 하게 되고, 그 과정들이 아직까지 재밌다. 연기하기를 잘했다고 느끼는 때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될 때. 연기를 통해 다양한 캐릭터와 직업군을 살아본다. 보통 사람들이 느끼는 배우의 매력이 나에게도 똑같이 매력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연기에 대한, 좋은 작품에 대한 목마름이 아직도 있다고 밝힌 정재영은 유독 영화에만 출연을 하고 있다. 그 이유에 대해 특별히 드라마를 꺼리기 때문은 아니라고, 단지 인연이 닿지 않았을 뿐이라고.
“몇 년 전에는 가끔 섭외가 들어오기도 했는데, 지금은 잘 안 찾으신다. 계속 영화를 하고 있다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영화에서 원하는 나이대와 안방에서 원하는 나이대가 달라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특별히 드라마를 꺼리지는 않는다. 좋은 작품이 있다면 출연하고 싶다.”
하지만 한류스타인 박시후의 인기는 살짝 부럽기도 했다고 귀띔했다. 촬영장에 찾아오는 한류팬들이 자신에게까지 선물을 주더라며. 하지만 그런 인기나 흥행, 세계 영화제 수상 등 외적인 요소들을 위해 연기를 하지 않는다고 못박았다.
“세계 영화제의 수상이나 인기는 복권 당첨이나 보너스 같은 거다. 열정을 다해 하다보면 저절로 얻어지는 것들이다. 그런 것을 위해 연기한다면 이 일을 오래하지 못할 것이다. 흥행 역시 마찬가지다. 농부들이 농사를 짓는 것과 같다. 매년 열심히 노력하지만, 한해는 태풍으로 흉년이 들 수도 있고, 한해는 날씨가 좋아 풍년이 들 수도 있다. 농사짓는 것 자체를 좋아하지 않으면 매년 달라지는 그 상황을 어떻게 버티겠나. 과정을 즐기면서 좋은 연기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배우 역시 오래할 수 없는 직업이다.”
그는 마찬가지로 나이가 들어 주인공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도, 자신이 열정이 있을 때까지 이 일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아울러 많은 연세에도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계신 이순재가 정말 성공한 배우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배우 생활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다양한 캐릭터를 해보는 것이 배우로서 바람이다. 끝을 두지 않고 내가 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 해보고 싶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이순재 선배님은 성공한 인생이다. 배우로서 열정과 이 일에 대한 애정이 부럽다. 그 연세에 그렇게 힘든 스케줄을 소화하자면 열정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 열정이 존경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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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선 기자 sunda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