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SK 선수단이 한국시리즈 이후 처음 모였다. 준우승의 아쉬움이 진할 법 했지만 분위기는 의외로 밝았다. 그런데 한 가지 특별한 점이 있었다. 다들 손에 뭔가 하나씩이 들려 있었다. 바로 각자의 부상 부위를 찍은 MRI 필름이었다.
이만수(54) SK 감독은 “선수들 모두가 (MRI를) 찍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문제는 한숨에서 그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필름 판독 결과를 보고는 비명이 나왔다. 이 감독은 “대부분의 선수들이 하나씩 이상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다가 내년에는 우리가 야구를 제대로 못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선수들 야구인생이 끝날 듯 싶었다”라고 떠올렸다.
SK는 올 시즌 주축 선수들의 부상으로 고전했다. 마운드는 폭탄을 맞은 수준이었다. 김광현 송은범 엄정욱 박희수 이재영 등이 각기 다른 몸의 이상 징후로 2군행을 경험했다. 건강하게 1년을 버틴 선수는 윤희상 밖에 없었다. 마운드에 가려 있지만 타선도 힘든 것은 마찬가지였다. “이 정도 아픈 것은 괜찮다”라며 투지를 불태웠으나 분명 정상적인 컨디션들은 아니었다. 야수들의 당황스런 성적 저하도 이와 연관이 있었다.

그래서 팀 자체 훈련은 사실상 포기했다. 지난 3일부터 플로리다 마무리 훈련이 진행 중이지만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포함된 선수는 3명만 보냈다. 임훈 김성현 모창민이다. 그 중에서도 올 시즌 막판 상무에서 제대한 모창민만이 멀쩡하다. 이 감독은 “임훈과 김성현도 허리쪽이 좋지 않다. 하지만 내년에 써야 할 선수들이다. 어쩔 수 없이 보냈다”라고 설명했다.
나머지 1군 주축 선수들은 모두 인천에 남았다. 재활과 자율훈련을 병행하기로 했다. 말 그대로 12월까지는 자체적인 ‘힐링 캠프’다. 오전 10시30분, 그리고 오후 1시30분 두 조로 나누어 자율훈련을 실시한다. 말이 자율훈련이지 실상을 보면 사실상의 재활훈련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는 게 이 감독의 생각이다. 아프지 않아야 정상적인 컨디션으로 다음 시즌을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시즌 자율훈련은 한국프로야구에서 낯선 방식이다. 이 감독도 “아마 프로야구에서 처음일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 감독은 선수들을 믿는다고 했다. 이 감독은 “자기 몸 상태는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다. 그에 맞춰 선수들이 알아서 할 것이다. 지난해도 자율훈련을 경험해 봤기 때문에 올해는 선수들도 요령이 생겼을 것”이라고 믿음을 드러냈다.
겨울 전력보강에 대해서도 일단 선수들의 건강이 우선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 감독은 “FA 영입이나 트레이드는 구단도 사정을 잘 알고 있다. 조율해서 같이 추진할 것”이라고 하면서도 “그것보다는 부상자 회복이 더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건강한 SK의 선수들이라면 전력은 충분하다. 이 감독은 “선수들만 건강하게 돌아왔으면 좋겠다”면서 “그 다음에는 겸손한 자세로 다시 한 번 도전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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