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의 이야기이지만 어느 정도 현실을 반영하는 드라마 속에는 다양한 직업군이 등장한다. 경찰, 의사, 변호사 등은 전문직 드라마의 단골 소재로 자리잡은지 오래이고, 로맨스 드라마에는 직업과 관계 없이 직책인 ‘실장’이 자주 등장한다. 드라마에 따라 직업과 직책을 바라보는 시선은 각기 다르나 유독 드라마 속 홀대를 받는 직업이 있으니 바로 기자다.
드라마 속 기자는 대부분 악역이며, 악역이 아니더라도 갈등을 몰고 다니는 사고뭉치로 그려지기 일쑤다. 한국 드라마 제작의 현실을 고스란히 전달하고 있는 SBS 월화드라마 ‘드라마의 제왕’에도 어김없이 기자가 등장한다.
지난 5일 첫 방송된 ‘드라마의 제왕’에서 드라마 제작자 앤서니 김(김명민 분)이 제작하는 드라마가 졸속 촬영으로 인해 테이프 배달을 하던 퀵서비스 기사가 사망에 이르자 기자들은 득달같이 달려들어 앤서니 김과 방송국에 사고 경위를 캐묻고 책임을 묻는다. 능수능란한 제작자인 앤서니는 기자들의 질문세례 속 어떻게든 사건을 덮기 위해 수습에 나선다. 이 과정에서 기자는 앤서니와 방송국 관계자들에게 피하고 싶은 ‘골칫덩어리’로 표현된다.

물론 부조리한 현실을 고발하고 정의를 바로잡는 기자도 있다. 종영한 SBS 월화드라마 ‘추적자’에는 부잣집 딸이지만 자신의 집안과 연루돼 있는 사건인 줄 알면서도 진실을 파헤치는 기자 서지원(고준희 분)이 등장한다. 고개를 끄덕일만한 일을 벌이고 다녔지만 어쨌든 서지원이라는 기자는 이 드라마의 핵심 갈등 요인 중에 하나였다.
배우 윤상현과 오만석이 출연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화제가 된 드라마 ‘사랑해요 아저씨’에도 유일한 악역인 기자가 등장한다. 사고로 식물인간이 됐다 깨어나는 톱스타의 유쾌발랄한 세상 적응기를 그린 이 드라마는 주인공들에게 사건의 비밀을 쥐고 협박하는 ‘못된’ 기자가 등장할 예정이다.
그렇다면 왜 드라마 속 기자들은 항상 악역이거나 갈등의 중심에 있는 캐릭터로만 표현될까. 한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는 “기자가 드라마에서 악역으로 자주 등장하는 것은 직업적인 특징 때문인 것 같다”면서 “누군가는 숨기고자 하는 내용을 파헤쳐야 하는 일을 하는 것이 기자의 소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다소 부정적인 모습만 표현되는 것 같다”고 견해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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