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전 전신 팀의 파란 눈 에이스는 이듬해 한국 무대를 밟아 17승을 올리며 새 소속팀의 창단 첫 우승에 공헌했다. 그리고 6년 후 후신팀의 외국인 에이스는 완봉으로 포효했다. 이는 다음 시즌 새 외국인 투수를 찾아야 하는 팀들 입장에서 엄청나게 매력적인 카드임에 분명하다. 삼성 라이온즈에게 완봉패 굴욕을 안긴 대만 챔피언 라미고 몽키스의 외국인 우완 마이클 조나단 로리 주니어(28)가 과연 다음 시즌 한국 무대를 밟을 수 있을 것인가.
로리는 9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벌어진 2012 마구 매니저 아시아시리즈 A조 삼성전에 선발로 나서 9이닝 동안 사사구 없이 3피안타(탈삼진 11개) 무실점으로 완봉 역투, 2년 연속 아시아시리즈 제패를 노리던 삼성에 치명적인 어깃장을 놓았다. 라미고는 로리의 대단한 활약을 앞세워 3-0으로 승리, 결승전에 선착했다. 그와 함께 삼성의 결승 진출 가능성은 첫 경기부터 좌절되고 말았다.
2007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 지명되었으나 메이저리그 무대는 밟지 못한 채 2012시즌 라미고의 새 외국인 투수로 합류, 8경기 6승 1패 1홀드 평균자책점 2.50의 호성적을 올린 로리는 경기 초반 안정된 투구를 펼치며 삼성 타선을 상대했다. 8경기 동안 이닝 수는 50⅓이닝. 계투 1경기를 감안하면 아무리 적어도 6이닝 이상은 평균적으로 소화해줬다는 계산이 나오는 맞춤형 선발 요원이다.

5이닝 째까지 2회 박석민에게 내준 좌전 안타와 4회 최형우에게 내준 우중간 2루타 정도를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구속보다 더 묵직한 구위와 안정적인 제구로 삼성 타선을 상대했다. 이날 경기 해설을 맡은 민훈기 해설위원은 “스트라이크 존 상하를 이용하는 투구를 펼친다”라며 로리의 기교투를 높이 샀다.
이날 로리의 최고 구속은 144km이며 141km까지 찍힌 투심 패스트볼, 체인지업과 커브 등을 섞어 던졌다. 그러나 단순한 빠르기가 아니라 199cm 장신에서 나오는 높은 타점과 안정된 제구, 경기 운영 능력에서 엄지손가락을 세울 만한 활약이었다.
이는 마치 지난 2006년 아시아시리즈에서 일본 챔피언 니혼햄을 혼쭐냈던 케니 레이번(전 SK)을 연상케 한다. 당시 라미고의 전신인 라뉴 베어스의 에이스로 활약한 레이번은 니혼햄을 상대로 7⅓이닝 동안 3피안타 1실점으로 분전하며 확실한 눈도장을 받았다. 그에게 고전했던 니혼햄은 물론 한국-일본 여러 구단의 러브콜을 받으며 스토브리그 행복한 고민에 빠졌던 레이번이다.
시리즈가 끝난 후 레이번은 SK와 계약을 체결했고 2007시즌 17승 8패 평균자책점 3.27을 기록하며 페넌트레이스-한국시리즈 통합 우승을 이끌었다. 2008시즌 5승 3패 평균자책점 3.30에 그쳤으나 못 던졌다기보다 승운이 부족했던 투수다.
레이번 뿐만 아니다. 지난해 라뉴에서 뛰다 올 시즌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한 좌완 쉐인 유먼은 13승 7패 1홀드 평균자책점 2.55를 기록하며 롯데의 플레이오프 진출에 힘을 보탠 모범 외국인 투수가 되었다. 로레의 경우는 투구 성향 상 유먼보다는 레이번과 가까운 스타일이다. 공교롭게도 레이번과 유먼은 모두 라뉴 출신이었고 대만에서 한국으로 영입된 실패 케이스인 마이클 존슨(2009년 SK), 짐 매그레인(2011년 SK)은 각각 퉁이와 슝디 출신. 로리는 라뉴의 후신인 라미고의 투수로 후신이기는 하지만 '믿고 쓸 수 있는 라뉴표'가 붙어있다.
다음 시즌 외국인 선수 인선을 놓고 데이브 부시와의 작별이 확정적인 SK와 라이언 사도스키의 재계약이 불투명한 롯데, 에이스 류현진이 메이저리그 진출을 노리는 데다 외국인 투수 슬롯 하나가 이미 비어있는 한화. 그리고 외국인 선발 3명을 기용할 수 있는 신생팀 NC 등이 새 외국인 투수를 찾고 있다. 199cm 장신에서 나오는 높은 타점과 묵직한 볼 끝. 그리고 같은 구종을 갖고도 스트라이크 존 상하를 이용해 던지는 기교파 피칭. 로리의 품격은 과연 다음 시즌 한국 무대에서 위력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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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박준형 기자 soul1014@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