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프로야구사에 아직 한번도 작성되지 못하고 있는 대기록인 ‘퍼펙트게임’ 수립 가능성을 놓고 가장 확률이 높아 보이는 투수를 골라보라면 대다수의 야구관계자들은 류현진(한화)이 아닌 김광현(SK)이나 윤석민(KIA) 등의 이름을 앞줄에 세운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투수로 2008 베이징 올림픽 결승전을 비롯한 굵직한 국제경기의 선발투수로 나서 임무를 완벽히 수행해내고, 수년간 지속된 소속 팀의 부진에도 해마다 에이스로서의 자중감을 잃지 않고 고군분투해온 류현진. 그간 세운 기록들을 비롯한 제구력과 구위 등, 전반적인 투구 능력을 감안할 때 결코 여타의 투수들에 밀리지 않는 실력을 가진 투수임이 확실함에도 유독 대기록 앞에서 사람들이 다른 투수들의 이름을 먼저 거론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류현진은 공을 갖고 놀 줄 아는 투수다.”

“힘들여 공을 뿌린다기 보다 공을 손에서 놓아 보내는 느낌이 든다.”
류현진의 투구를 포수 다음으로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심판원들이 종종 하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 속에는 뼈가 들어있다. 류현진은 주무기인 무겁고 빠른 직구와 다양한 변화구, 그리고 구속을 마음대로 조절해 구사하는 체인지업 등을 보조무기로 타자들을 요리해낸다. 한마디로 투구패턴의 완급조절 능력이 아주 뛰어난 투수다.
그러나 단 한차례의 실투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대기록에 류현진의 빼어난 완급조절 능력은 오히려 화를 부르는 경우가 많았다. 전력투구가 필요치 않는 상황에서 카운트 조절 성격의 공을 던지다 안타를 얻어맞는 경우가 잦았다. 이는 선발투수로서 가능한 한 긴 이닝을 버텨내야만 한다는 심리적 제약과 그러기 위해서는 필연 많은 투구수가 필요했기에 투구체력 분배에 신경을 쓰다 보니 따라붙는 현상들이었다.
하지만 이와 같은 그의 투구유형은 반대급부로 그를 이닝이터형 투수로 만들었고, 188cm의 큰 키에 98kg이라는 중량감 풍부한 하드웨어는 유연성까지 더해 격이 다른 투수로 그가 성장하는데 있어 밑바탕이 되어주었다. 여기에 상대적으로 집중력이 부족했던 팀 공격력과 수비력에 발목이 잡혀 승리와 인연을 맺지 못하는 날이 빈번했음에도 그러한 결과에 크게 연연해하지 않았던 의연한 멘탈까지, 류현진은 어느 감독을 막론하고 모두가 탐을 낼 만큼 훌륭한 투수로서의 자질을 완벽히 갖추고 있는 선수로 성장해 있었다.
그리고 2012년 11월, 류현진은 그의 가치를 MLB로부터도 인정받아 2500만 달러(한화 약 280억 원)를 상회하는 역대 4위의 막대한 포스팅 금액(2573만 달러)을 제시 받고 그토록 그리던 메이저리거의 꿈을 이루기 일보 직전에 와 있다. 류현진 개인의 차원을 떠나 한국선수의 존재가치와 한국프로야구의 위상을 한껏 드높였다는 점에서 대단히 경사스런 일이다.
하지만 특급 선수의 해외진출이 성사되면 늘 그랬듯이 기록은 또 한번 큰 후유증을 앓을 수밖에 없다. 2009년 유일한 200승 투수였던 송진우(한화)의 은퇴 이후 나이와 기량등에서 그의 기록에 다가설 만한 유일한 투수로 지목되었던 류현진의 모든 기록들은 언제 다시 열리게 될지 기약조차 할 수 없는 타임캡슐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기록에서 상당부분 위업을 이뤘음에도 아직도 어린(?) 나이라 할 수 있는 26세의 신체적 특권을 감안하면 류현진이 오를 투수부문 기록고지의 높이가 상당하리라 보였는데, 딱히 그 뒤를 이어 기록도전에 나설 만한 후보조차 떠오르지 않고 있는 현실에서 그의 미국행은 투수 기록분야를 완전 공황상태(?)에 빠지게 만들 것이 자명하다.
2006년 프로에 데뷔한 류현진의 통산 승수는 98승. 역대 24위 자리에 랭크 되어 있다. 올해 9승에 그치며 7년 연속 두 자릿수 승수 달성에 실패하긴 했지만 연평균 14승쯤 따낸 것을 생각할 때 30대 초반 정도면 200승 고지에 오를 수 있다는 계산이 서지만 이제는 일장춘몽이 되었다.
통산 투구이닝에서도 지난해까지 류현진은 겨우 만6년의 일천한(?) 경력 탓에 통산 50걸 안에 들지 못했지만, 2012시즌 종료 후 통산 1269이닝으로 불어 단번에 30위권 이내로의 도약을 이뤄냈다. 이 부문 최고기록은 송진우의 3003이닝. 류현진이 던진 매년 181이닝 가량의 평균 투구이닝기록을 곧이 곧대로 대입할 때 10년이면 송진우의 기록을 충분히 넘어설 수 있었지만 역시 올 스톱이다.
통산 최다 탈삼진부문에서는 더욱 아쉬움이 느껴진다. 류현진이 프로 7년간 탈취한 탈삼진 수는 1238개로 연평균 176개. 불과 7년 만에 류현진은 통산 탈삼진 서열에서 10위권 안까지 파고 들었다. 2048개로 역시 꼭대기를 선점하고 있는 송진우의 기록에 810개 모자란 기록으로 류현진의 탈삼진 기록 추이를 밟아가면 만 4년이면 1위 자리에 오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2008년과 2011년 각각 김광현(SK)과 윤석민(KIA)에게 타이틀을 잠시 넘겨준 것을 제외하고 7년 동안 5번의 최다탈삼진 부문 1위 자리를 견고히 지켜낸 덕분이다.
이러한 통계적인 수치 외에도 2006년 데뷔 첫 해에 신인왕은 물론 투수부문 3관왕을 쓸어 담고 역사상 유일무이하게 정규리그 MVP까지 독식했던 요란한 스타트, 2010년 단일 시즌 세계 최다기록인 23경기 연속 퀄리티 스타트(Q.S) 기록달성 및 개인 29경기 연속 퀼리티 스타트 기록 유지. 2000년대의 유일한 1점대 방어율 기록 투수(2010년의 1.82), 2010년 LG를 상대로 작성한 17K 정규이닝(9회) 최다 탈삼진 기록 등, 류현진이 그간 새겨 놓은 족적은 깊고도 뚜렷하다.
2006년~2012년까지 프로 7년간 190경기에 출장, 27차례의 완투 속에 98승 52패 1세이브 방어율 2.80을 기록한 류현진의 기록 시계바늘은 이제 곧 멈춰선다. 그의 일시 정지된 기록들이 훗날 세상 밖으로 나와 다시 이어질지 확신하기 어렵지만, 한국을 넘어 세계를 향한 그의 용감한 도전 앞에 오래 전 박찬호 때와는 또 다른 설렘과 기대감으로 벌써부터 팬들의 가슴은 두근대기 시작하고 있다.
KBO 기록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