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에이전트의 힘일까. 메이저리그(MLB)를 주름잡고 있는 스콧 보라스(60)의 힘은 류현진(25, 한화)의 출국 현장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류현진은 약 2570만 달러(280억 원)의 몸값을 인정받으며 미국행을 눈앞에 두고 있다. 빅 마켓이자 한국에서도 인기가 높은 LA다저스가 단독 협상권을 따냈기에 기대가 커지는 양상이다. 이제 연봉협상만 잘 마무리되면 류현진은 내년부터 꿈의 무대라는 MLB에서 뛸 수 있다. 전 국민적인 관심이 류현진에 집중되고 있다.
때문에 14일 출국하는 류현진을 보기 위해 많은 취재진들이 인천공항에 몰려든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류현진 측은 극도의 보안을 유지했다. 언제 공항에 도착하는지조차도 극비사항에 붙였다. 출국 전 15분 정도 취재진과 자유롭게 대화를 나눈 추신수(30, 클리블랜드)와는 크게 대비됐다. 어떤 게이트로 나갈지 알 수 없어 취재진들로서는 공항 곳곳에 진을 치고 기다리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이유는 딱 하나였다. 보라스의 지시 때문이다. 보라스는 류현진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연봉 협상에 변수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철저한 함구령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류현진과 같이 모습을 드러낸 보라스 코퍼레이션의 한국측 관계자들도 비슷한 취지의 이야기를 했다. 평소 비교적 활발한 성격인 류현진도 이를 의식한 듯 입을 굳게 다물었다. 보라스의 한 마디에 모든 관계자들이 얼어붙은 셈이 됐다.
작은 소동도 벌어졌다. 류현진은 오후 3시가 조금 넘어 인천공항에 모습을 드러냈다. 출국장 1번 게이트 쪽이었다. 추신수의 공식 인터뷰는 4번 게이트 앞에서 열렸다. 1번과 4번 게이트는 약 300m 정도 떨어져 있다. 결코 가깝지 않은 거리다. 류현진을 보기 위한 취재진들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그러나 워낙 빨리 사라져 어떠한 이야기도 들을 수 없었다. 인기 예능 프로그램인 ‘런닝맨’을 찍는 것 같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왔다.
결국 취재진의 요청에 류현진은 다시 출국장으로 나왔다. 다만 합의 사항은 확실했다. 사진 촬영만 응하고 인터뷰는 하지 않기로 했다. 관계자의 요청에 따라 방송용 마이크도 모두 철수했다. 모습을 드러낸 류현진은 1분 정도 사진 촬영에 임한 뒤 다시 심사대 뒤편으로 사라졌다. 선수의 일거수일투족까지 모두 관리하는 슈퍼 에이전트 보라스의 꼼꼼함이 여실히 드러나는 류현진의 출국 풍경이었다. 결국 류현진은 "잘 다녀오겠습니다"라는 8글자만을 남긴 채 미국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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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곽영래 기자, youngrae@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