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보라는 6년 전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서 13남매 대가족의 생활을 담은 ‘천사들의 합창’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알려졌다. 대가족의 둘째 딸인 남보라는 예쁘장한 외모에 발랄한 모습으로 시청자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았고 어느새 배우로 데뷔했다.
당시 일반인이었던 남보라의 데뷔는 대중에게 마냥 좋게 비치지는 않았다. 때문에 남보라를 향한 편견은 계속해서 그의 뒤에 따라붙었다. 그러나 연기가 어색할 거라는 예상을 시원하게 깨버렸다.
‘어? 연기 진짜 잘하네’라고 작품마다 대중을 깜짝깜짝 놀라게 할 정도의 연기력을 선보였다. 차근히 연기경험을 쌓아온 24살의 어린 배우 남보라는 이번 영화 ‘돈 크라이 마미’에서 절정의 연기를 펼쳤다.

“연기수업을 받고 있어요. 저 어렸을 때 미스코리아 나가보라고 했지 제가 연예인이 되고 싶다거나 연기에 소질은 못 느꼈어요. 이제 연기를 하면서 ‘잘하는 연기는 뭘까’라는 생각을 해요. 그건 다큐멘터리 같은 연기 같아요. 진짜 실제 같은 것. 영화를 많이 보기도 하지만 항상 연기 공부를 할 때는 다큐멘터리를 찾아봐요.”
다큐멘터리같이 자연스러운 연기, 생활연기를 하고 싶은 남보라는 ‘돈 크라이 마미’ 촬영을 위해서 다큐멘터리를 찾아봤지만 피해자 가족 얘기들이 주를 이뤘을 뿐 정작 피해자의 얘기를 듣기는 어려웠다.
“피해자에 대한 인권이 철저하게 보호돼 있어서 자료를 찾기 어려웠어요.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해봤는데 끊임없이 생각하고 상상하는 수밖에 없더라고요. 내가 진짜 은아(극 중 이름)라면 어떨까. 제 나름대로 사건에 대한 상황과 시나리오를 머릿속으로 그려봤어요.”

여러 방면으로 은아에게 투자한 남보라는 은아에 빙의 돼 연기를 펼쳤고 결국 생각보다 큰 후유증을 겪어야 했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관객과의 대화 중 울었고 영화 제작보고회에서 또 한 번 눈물을 보였다.
“그때 얘기를 하다가 은아의 감정에 갑자기 몰입돼서 눈물이 났어요. 아무래도 제가 맡은 역할의 감정, 다시 말해 저의 감정이다 보니까 눈물이 나온 것 같아요. 주변에서 많이 걱정해줬는데 지금은 괜찮아요.(웃음)”
남보라는 괜찮다고 하지만 그를 향한 대중의 우려는 점점 커지고 있는 상황. 영화 ‘돌이킬 수 없는’에서 배우 모니카 벨루치는 참혹하게 강간을 당하는 장면을 촬영한 후 나흘간 병원 신세를 진 것과 같이 여성의 아픔을 연기한 여배우들이 실제 정신과 상담을 받기도 하기 때문.
“성폭행을 당한 은아를 연기할 때는 버티기 어려울 정도였어요. 나 스스로 잘 버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 볼 때는 아니었죠. 그런데 이건 내 문제였기 때문에 나 스스로 극복해야 했어요. 지금은 온전히 벗어났어요. ‘돈 크라이 마미’ 촬영을 끝나고 드라마 ‘영광의 재인’에 출연했는데 우울해할 수 없는 철부지 막내딸 역할이었죠. 은아보다 가벼운 역할이라 쉽게 벗어날 수 있었어요. 그때 이후로 아무것도 안 했으면 제가 어떻게 됐을지 모르겠어요. 바빴기 때문에 우울했던 마음을 빨리 잊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대부분의 배우는 무거운 캐릭터를 연기한 후 다음 작품에서 좀 더 밝은 캐릭터를 선택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특이하게도 남보라는 올해 내내 유난히 그의 마음을 힘들게 하는 인물들과 함께했다. 드라마 ‘해를 품은 달’부터 영화 ‘하울링’, ‘무서운 이야기’까지 비극적인 역할들만 연기했다.
“항상 능동적이고 수동적인 역할을 했어요. 가해자보다는 피해자 연기를 많이 했죠. 저는 밝은 이미지인데 그러지 않을 것 같은 애가 정반대의 연기를 하면 더 호소력이 있는 것 같아요. ‘돈 크라이 마미’의 김용한 감독님도 그런 생각을 한 게 아닐까 해요. 도저히 그런 일(성폭행)을 당하지 않을 것 같은 아이가 안 좋은 일을 당했을 때 관객들이 그 캐릭터에서 더 큰 안타까움과 연민을 느낄 것 같아요.”
남보라가 후유증에 시달렸을 정도로 ‘돈 크라이 마미’는 성폭행에 대한 우리나라의 불편한 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에 영상물등급위원회는 청소년 관람불가로 판정했다. 그러나 재심의 결과 15세 이상 관람가 판정을 받았다. 이에 대한 남보라의 걱정은 두 가지.
“‘돈 크라이 마미’는 물론 청소년들이 봐야 하는 영화고 이 사회에 꼭 필요한 영화예요. 그런데 동생들한테 추천해주고 싶지는 않아요. 동생들이 충격을 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누나로서 즐겁고 밝은 영화를 보여주고 싶은데 이번 영화를 보고 충격을 받을까 봐 그리고 혹여나 마음에 상처를 입을 수 있지 않을까 조바심도 있는 게 사실이에요. 그래서 동생들에게 보여줄지 말지 고민 중이에요.”
kangsj@osen.co.kr
박준형 기자 soulsoul1014@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