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이 닿아 여기서 다시 만나네".
롯데 자이언츠 15대 사령탑에 오른 김시진(54) 감독은 팀의 주전포수 강민호(27)과 유쾌한 추억이 있다. 넥센 히어로즈 감독을 맡았던 올해 6월, 강민호는 넥센을 상대로 사직구장에서 쐐기 만루홈런을 쏘아 올렸다. 그리고 그 다음 날, 강민호는 태연하게 넥센 더그아웃을 찾아가 김 감독에 안마를 빙자(?)한 접근을 했다.
당시 김 감독은 "너 뭐하러 여기 또 왔냐. 얼른 안 나가냐"고 구박을 하고 강민호를 쫓아 냈지만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붙임성이 좋은 강민호는 누구에게나 쉽게 다가간다. 이미 대표팀에서 안면을 익혔던 김 감독이었기에 스스럼없이 장난을 친 것이다.

14일 취임식을 마친 김 감독은 사직구장에서 선수들의 훈련을 지켜보다 강민호 이야기를 꺼냈다. "사직구장에서 민호가 홈런을 치고 나서 2루에서 3루로 가면서 나를 쳐다보고 씨익 웃더라. 홈런 치고나서 상대 감독을 보고 웃는 선수는 처음 봤다"고 말한 김 감독은 "그래서 다음 날 인사 왔길래 FA 언제 되냐고 물어본 다음 '그냥 일본이나 가 버려라'고 말한 기억이 난다"고 껄껄 웃었다.
5개월 전 상대 팀 감독과 선수로 만났던 두 사람이 한솥밥을 먹게 됐을 것이라고 누가 짐작이나 했을까. 김 감독은 "사람 인연이라는 게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 같다. 일본 가라고 했던 민호를 여기(롯데)서 만나게 됐다"고 했다.
강민호와의 추억을 더듬던 김 감독은 강민호 기량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김 감독은 "그 나이에 그만한 경험을 가진 포수가 어디에 있는가. 같은 나이대에서 따를 선수가 없다. 타격, 리드, 송구 등 흠 잡을 구석이 없다"고 강민호를 추켜 세웠다. 최소한 포수 걱정은 덜었다는 데에서 오는 안도감도 엿볼 수 있었다.
또한 김 감독은 평소 포수리드에 대한 지론도 덧붙였다. 김 감독은 포수에게 사인을 내지 않기로 유명하다. "벤치에서 사인을 내게 되면 두 가지를 놓치게 된다"고 입을 연 김 감독은 "일단 포수가 공부를 안 하게 된다. 전력분석을 제대로 읽지 않는 선수들이 많다. 포수가 책임지고 볼 배합을 공부해야 성장한다. 그리고 책임감도 없어진다. 사인을 냈는데 그 공이 얻어 맞으면 포수는 속으로 '내가 사인 낸 것이 아니니 괜찮다'고 안도를 한다. 자기가 직접 사인을 내고, 실패도 해 봐야 성장한다"고 강조했다.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강민호를 안방 마님으로 맞이한 김 감독이지만 걱정거리도 있다. 바로 내년시즌을 마치면 강민호는 FA 자격을 얻는 것. 과거 "일본이나 가 버려라"는 농담은 이제 실현돼선 안 될 일이 됐다. 정말 강민호가 내년 일본에 가게 되면 어떡하냐는 질문에 김 감독은 난감한 듯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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