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기록으로 판단할 선수가 아니다. 그는 팀의 필승 계투로 뛰면서 그와 함께 투수진의 리더 역할을 하던 선수였다. 팀 케미스트리가 중요한 만큼 새로운 소속팀에서 어떻게 선수들을 뭉치게 할 것인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국민 노예’ 정현욱(34)이 이제는 LG 트윈스에서 새로운 야구 인생을 그린다.
LG는 원 소속구단의 우선 협상 기간이 끝난 뒤 곧바로 정현욱과 접촉, 4년 28억6천만원의 계약을 이끌어냈다. 정현욱은 올 시즌 54경기 2승 5패 3홀드 평균자책점 3.16으로 지난 5시즌 중 가장 저조한 성적을 올렸다. 그러나 여전히 150km 이상의 빠르고 묵직한 직구를 던질 수 있는 건강한 계투 요원 중 한 명이다.
지난해까지 정현욱은 삼성 마운드에 없어서는 안 될 투수로 맹활약했다. 2008년에는 선발, 계투를 오가며 규정이닝(126이닝)까지 채우는 끝에 시즌 10승을 달성한 바 있고 지난 시즌에는 24홀드를 올리며 홀드 부문 2위에 올랐다.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에서는 당당히 태극마크를 달고 152km의 광속구를 던지며 ‘국민 노예’ 인증을 받은 정현욱이다.

정현욱의 가치를 높여주는 것은 비단 경기 기록 뿐만이 아니다. 지난 시즌 도중 정현욱은 대승을 거둔 경기에서 막판 실책을 범한 야수에게 일침을 가했던 바 있다. “웃음이 나오냐”라는 말로 팬들에게도 잘 알려진 이 장면은 물론이고 정현욱은 선수단 기강이 해이해질 때 일침을 가하던 선수였다.
어린 선수가 잠깐의 활약으로 으쓱댈 때 긴장감을 불어넣던 선수 또한 정현욱이다. 정현욱의 영향을 통해 윤성환, 오승환 등 후배 투수들도 보고 배우며 삼성의 단단한 팀워크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 최근 들어 야구 인기가 높아지면서 젊은 선수들의 개인주의 현상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가운데에서 삼성이 흔들리지 않고 ‘지키는 야구’를 펼칠 수 있게 된 데는 정현욱의 몫도 컸다.
그 정현욱이 LG 유니폼을 입는다는 것은 팀에도 커다란 터닝포인트가 될 수 있다. 올 시즌을 치르며 팀 분위기나 기강이 이전보다 좋아졌다는 평을 받는 LG지만 과거 LG는 ‘이기주의가 만연한 팀’이라는 달갑지 않은 꼬리표를 받았었다. 팬들의 성원이 뜨겁다는 장점을 활용하지 못하고 주위의 기대에 부화뇌동되어 미처 싹을 피우지 못하고 침체기를 걷는 유망주도 나온 것이 사실이다. 그 LG에 유망주가 바로 클 수 있도록 때로는 쓴소리도 아끼지 않는 정현욱이 몸 담는다는 것은 또 다른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동안 LG는 10년 간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하면서 패배의식은 물론이고 선수들 사이 알게 모르게 자리잡았던 개인주의로도 고역을 치렀던 팀이다. 그러나 올 시즌에는 김기태 감독의 리더십 아래 선수들이 규합하며 최하위권 전력 예상에서 전반기 돌풍을 일으킨 바 있다. 정성훈, 이진영이 FA 시장에 나가지 않고 재계약한 것도 좋아진 팀 분위기에 감화된 것이 컸다. 그 LG에 또 한 명의 ‘형님 리더십’ 소유자 정현욱이 가세한다. 이는 분명 LG에 호재다.
김기태 감독도 정현욱에 대해 “경험도 많고 굉장히 성실한 친구다. 어린 선수들이 많이 보고 배울 것이다”며 정현욱의 존재가 어린 선수들 성장에 기폭제 역할을 할 것이라 전망했다. 또 김 감독은 “지난겨울에는 많이 힘들었는데 올 겨울에는 구단에서 많이 도와주셔서 시작이 좋다. 준비 잘해서 2013시즌 제대로 해보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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