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로맨틱하고 아름다운 그 날, 그 분위기를 함께 즐길 수 있다는 것이 나의 재능이죠.”
특별한 때가 아니면 입을 일이 없는, 하지만 그만큼 아름다운 의상. 바로 드레스다. 정말로 중요하게 여겨지지만 ‘단골’을 만들기는 힘든 드레스 디자이너라는 직업. 이것을 업으로 삼아 20년 넘게 자신의 브랜드를 키워 온 이가 ‘데니쉐르 by 서승연’의 서승연 디자이너다.
소프라노 조수미를 비롯해 소녀시대 제시카, 옥주현 등 뮤지컬계에서 활약중인 스타들, 김선아, 장나라 등 배우들까지 다양한 셀러브리티들의 드레스를 제작해 온 서 디자이너는 최근 ‘2012 슈퍼모델 선발대회’ 본선 후보들의 파이널 드레스를 제작해 또 한 번 유명세를 탔다.

저마다 가장 잘 어울리는 데니쉐르 by 서승연의 드레스를 입은 슈퍼모델 선발대회 입상자 5명과 함께 강남의 데니쉐르 바이 서승연 숍에서 서 디자이너를 만나 그의 드레스와 트렌드 이야기를 들었다.
▲‘대충’ 원하는 것을 말만 해도, ‘딱’ 알아야 해요
“드레스란 사실 특별할 때 아니면 입을 수 없는 옷이죠. 하지만 그런 만큼 그 순간을 이해하지 않으면 만들어낼 수가 없어요. 그런 순간의 분위기를 입는 사람 못지 않게 즐길 수 있다는 게 나의 재능이죠.” 서승연 디자이너는 ‘드레스 디자이너로서의 재능’에 대해 이처럼 딱 부러지게 설명했다.
“결혼식이든 뮤지컬이든 모델이 등장하는 패션쇼든, 그 상황에 내가 선다고 생각하고 거기 딱 맞는 의상을 디자인해야 돼요. 중요한 건 거기에 정답은 없지만, 입는 사람이 뭘 원하는지 ‘대충’ 듣고 ‘딱 이거다’ 싶은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죠. 계속 그런 식으로 광고나 화보에서 나의 색깔을 확실히 보여주려고 하다 보니, 이렇게 찾아주는 셀러브리티도 많아졌네요.”
수많은 브랜드들이 자기를 알리려고 유명인에 대한 무료 협찬부터 엄청난 금액을 들인 홍보까지 아끼지 않는 요즘이지만, 서 디자이너는 “생각보다 딱히 나를 알리려고 한 것은 없었다”고 회상한다.
자신을 결정적으로 유명하게 해 준 ‘조수미 드레스 디자이너’라는 별칭 또한 얻게 된 것은 우연에 가까웠다. “조수미 선생님의 스타일리스트가 앙드레 김 선생이 돌아가시고 나서 유럽적인 드레스 디자인을 할 수 있는 디자이너를 찾던 중에 저에게 주목하셔서 인연이 됐어요. 옷이 마음에 드셨는지 제게 꽃도 보내 주시고, 직접 피팅을 하러 와주시기도 했죠.”
세계적인 아티스트인 조수미지만 서 디자이너에게 “이렇게 저렇게 옷을 만들어달라”고 꼬치꼬치 주문하지는 않는다. “지난해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개막식 때도 부를 노래와 무대 콘셉트를 알려주시면 그 상황에 맞춰 제가 디자인을 해 드리고, 그 디자인을 놓고 서로 합의를 해 만들어가는 식으로 작업해요.” ‘대충’ 말만 해도 ‘딱’인 디자인을 만들어내는 그의 능력은 이런 식으로 인정을 받고 있었다.
▲아무리 아름다운 옷이라도 ‘마인드’ 없이는 무용지물
드레스가 필요한 상황, 주인공의 체형과 분위기에 딱 맞는 의상이 준비됐더라도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다. 바로 ‘마인드’다. 정통 유럽풍으로, 정확히는 ‘로코코’ 보다 ‘고딕’에 가까운 스타일의 드레스를 만드는 서 디자이너의 옷에 대해 ‘쉽게 입기 힘들다’고 하는 이들도 있다.
“남들과는 달라야겠다는 생각이 확고한 사람들이 입어야 확실히 예쁜 것 같아요. 아무리 미인이라도, ‘튀기 싫다’, ‘남들하고 비슷하게, 무난하게 입자’는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입으면 빛이 나지 않아요. 이건 사실 제 옷이 아니라 어떤 옷을 입을 때든 마찬가지예요.”
서 디자이너가 볼 때 이른바 ‘패셔니스타’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재능은 패션 감각뿐 아니라 이 ‘마인드’라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말했을 때 제가 그걸 구현시켜 주면, ‘바로 이거’라면서 죽이 착착 맞는 기분이 있어요. 물론 아니다 싶으면 자기 의견을 알아듣기 쉽게 표현하기도 하지요. 제시카, 옥주현 모두 그런 분들이에요.”
서 디자이너는 옥주현의 뮤지컬 ‘황태자 루돌프’ 의상과 제시카의 ‘리걸리 블론드’ 의상 작업 때문에 인터뷰 시점에도 분주했다. “누구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이런 마인드와 자신이 원하는 바가 확립되지 않았는데 그저 스타일리스트 손에 끌려온 경우는 저와 손발이 맞지 않아서 서로를 참 힘들게 하기도 해요(웃음).”
▲디자이너가 일러주는 ‘결점 커버법’ & 올 시즌 드레스 트렌드
셀러브리티가 사랑하는 하이엔드 드레스 디자이너를 만난 이상, 예비 신부 또는 결혼을 하고자 하는 여성들이 가장 궁금한 것은 올 시즌의 드레스 트렌드다. 사실 결혼 인구가 줄고 혼인 연령이 올라가면서 웨딩드레스 시장은 점점 작아지고 있지만, 각종 파티 문화의 확산으로 결혼 외의 이벤트를 위한 드레스를 찾는 이들은 늘어나는 추세라고. 이 모든 사람들을 위해 서 디자이너에게 올 시즌 드레스 트렌드 분석을 요청했다.
서 디자이너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내는 디자이너라고 해도, 트렌드 분석을 빼놓을 수는 없다”며 “디자인의 첫 작업은 늘 연구와 공부”라고 입을 떼었다. 물론 ‘데니쉐르 by 서승연’에서는 그 트렌드를 그대로 반영한 의상을 만들지는 않는다.
“올 시즌 컬러 톤은 점점 가벼워지고 있어요. 무거운 크림색보다는 굉장히 가벼운 오프 화이트가 유행이지요. 대체로 F/W 시즌에는 짙은 상아빛이 유행하는 반면, S/S에는 색상이 좀 더 가벼워지기 마련이에요. 색상은 가벼워지고, 스타일은 좀 더 사랑스럽고, 로맨틱하고 여성스러워질 거예요. 그런데 나쁜 경제 상황은 스타일에도 영향을 미쳐요. 불황이다 보니 실질적으로 드레스에도 천을 많이 쓸 수가 없는 거죠. 그래서 좁고 슬림한 머메이드 라인이나 A라인 드레스가 유행할 것 같아요. 곧 유행할 거라는 스타일 중에선 내 눈에는 좀 초라해 보이는 드레스들도 많더라고요.”
이런 분석을 바탕으로 서 디자이너는 자신의 과감한 스타일을 더한 올 시즌 드레스들을 선보일 계획이다.
“순백이어야 한다는 고정 관념이 있는 신부 드레스에도 금사나 피치(peach) 톤을 써서 다양한 변화를 주려고 해요. 사실 순백의 드레스가 유행한 건 최근, 그러니까 19세기 말 정도부터랍니다. 유럽의 왕비들은 결혼할 때 짙은 컬러에 금색 장식이 많이 달린 아주 화려한 옷을 입었어요. 저는 철저히 클래식에 기반을 두고 디자인을 하는데, 그런 화려한 고딕풍 드레스를 항상 염두에 두지요. 올 시즌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예요.”
서 디자이너가 슈퍼모델 5인과 함께 선보인 드레스들에서 그의 클래식하면서도 과감한 스타일을 일부 엿볼 수 있다. 소매에 화려한 레이스가 달려 있거나, 흰 공단 소재의 드레스 자락이 위엄있게 퍼지는 실루엣 등은 과연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스타일이다.
이어서 다양한 스타일의 드레스와 함께 ‘고민별’ 드레스 선택 요령에 대해 조언을 부탁했다.

▲서승연 디자이너가 말하는 ‘고민별’ 드레스 선택법
1. 하체비만: 동양인에게서 많이 찾아볼 수 있지만, 사실 드레스를 고를 때는 걱정이 필요없다. 하의 부분이 몸에 붙는 것보다는 페티코트를 입고 풍성하게 연출하는 ‘볼 라인’이 최고다.
2. 팔뚝에 살이 많은 경우: 하체비만과 함께 가장 흔한 고민이다. 그런데 팔뚝을 무조건 가린다고 해서 가늘어 보이는 게 아니다. 다른 부분으로 시선을 분산시켜야 한다. 네크라인에 화려한 디테일을 넣거나, 확 튀는 베일 등을 잘 쓰면 된다. 예를 들어 팔을 오히려 과감히 노출시키고 화려한 베일과 짧은 미니 장갑을 활용해 귀엽게 연출하는 식이다.
3. 키가 작으면서 지나치게 볼륨감이 있는 경우: 일반적으로 신부들이 선호하는 튜브톱 스타일보다 칼라가 달린 재킷 스타일의 웨딩드레스를 추천한다. V라인 형태로 몸매가 슬림하게 연출된다. 또 현란한 비즈나 레이스 장식을 잘 넣으면 보는 사람이 ‘장식 때문에 몸이 커 보인다’고 생각하게 돼, 오히려 날씬해 보일 수 있다. 키가 많이 작다면 전체적으로 길어 보이는 실루엣의 홀터넥 드레스가 유용하다.
4. 신랑보다 키가 큰 경우: 이것도 꽤 다수를 차지하는 고민이다. 그저 너무 작아보이게 하려고 하는 것보다는 밸런스를 맞추는 게 중요하다. 최대한 슬림하게 입는 게 거의 유일한 대안인데, 지나치게 작아 보이려 하다가는 날씬해 보이지 않을 수도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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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SBS 슈퍼모델 선발대회 수상자 정하은(Basket상), 권은진(하프클럽상), 황세진(블랙야크상), 이정현(스킨푸드상), 서혜진(365mc 네트웍스상/오키나와 인기상(아래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