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아무 것도 아니었는데 배에 기름만 찼었다. 그래서 ‘만년 유망주’란 꼬리표를 떼지 못한 것 같다.”
2012 페넌트레이스가 한창이었던 어느 날, 김태군(23)은 주전포수로 출장하고 있는 것에 대한 기쁨보다는 지난날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지난겨울 김태군은 프랜차이즈 포수 조인성의 FA 이적으로 차기 주전포수 1순위로 꼽혔지만 유난히 추운 겨울을 보냈다. 체력테스트 탈락과 전지훈련 명단 제외로 2군에 머물렀고 시즌 개막 후 한 달이 지나서야 1군으로부터 호출을 받았다.

“사실 야구를 그만둘까도 생각했었다. 누군가를 향한 원망보다는 내 자신에게 너무 실망스러웠고 처음으로 야구가 내 길이 아닌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그래도 장광호 코치님 덕분에 다시 그라운드에 돌아올 수 있었다. 방황하던 내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보자’고 힘을 불어넣어주셨기 때문에 다시 포수마스크를 잡았다.”
벼랑 끝까지 몰렸던 김태군이 일어서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5월 5일 잠실 두산전부터 1군에 콜업됐고 곧바로 주전포수 마스크를 썼다. 이전보다 월등히 좋아진 2루 송구와 블로킹 능력으로 겨울에 모진 바람을 맞으며 흘린 땀이 헛되지 않음을 증명했다. 기량 외적으로도 한층 성숙했다. 투수가 호투한 날이면 언제나 “내 리드를 믿고 따라준 투수에게 너무 고맙다”고 하는 반면, 패한 날에는 “내가 부족했기 때문에 우리 투수가 고전했다”며 자신을 낮췄다. 덕아웃에서는 한 순간도 펜을 놓지 않으며 상대 팀을 연구했다.
팀이 대대적인 포수진 리빌딩에 들어서면서 김태군의 선발출장이 시즌 끝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포수 중 수비력은 가장 좋았지만 6월을 기점으로 팀 성적이 급격히 떨어졌고 그러면서 경쟁자인 윤요섭, 조윤준에게 기회가 갔다. 그래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김태군이 홈플레이트를 지켰다. 경기 후반 팀이 리드하고 있는 상황에선 어김없이 포수마스크를 들고 그라운드를 향했다. 마무리투수 봉중근과 함께 마무리포수로서 팀 승리를 지켰고 올 시즌 목표로 삼았던 100경기 출장·도루저지율 3할도 달성했다.
2012년 시련을 통해 한 단계 성장한 김태군은 지난 15일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9구단 NC의 특별지명으로 유니폼을 갈아입게 된 것이다. 순간 김태군은 눈물을 흘렀고 사령탑 김기태 감독도 “함께 했던 식구를 떠나보내게 됐다. 태군이한테 미안하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NC 지명 결과에 대한 언론 인터뷰를 정중히 거절했다.
LG 입단 후 김태군이 보낸 시간은 롤러코스터였다. 프로 첫 해부터 1군 무대를 경험했고 이듬해에는 54경기에 출장했다. 20살에 불과했지만 적극적으로 선배 투수들을 이끌며 가능성을 비췄다. 그러나 이후 인기 팀의 레귤러 멤버가 됐다는 자아도취에 빠지면서 발전이 더뎠던 것도 사실이다.
이제 김태군은 NC 유니폼을 입고 새로운 출발선에 섰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포수마스크를 쓰고 나서 7년 동안 모진 경험은 다했다. 뜻하지 않은 이적도 겪었다. 이 모든 일들이 지금의 김태군에게는 상처가 아닌 성장의 발판이 될 것이다. 김태군의 진정한 프로무대는 이제 막 시작한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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