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P 있다면 주인공은 누구일까?
OSEN 박현철 기자
발행 2012.11.21 12: 50

한국야구위원회(KBO)에서 공식적으로 시상하는 것은 아니다. 야구인들이 뽑는 일구상에서 ‘의지노력상’을 수여하기도 하지만 국내 프로야구에서 공식적인 MIP(Most Improved Player) 타이틀은 주어지지 않는다. 만약 국내 프로야구에서도 꾸준한 노력을 통해 빛을 발한 선수에게 MIP의 영예를 수여한다면 그 주인공은 누가 될 것인가.
올 시즌 한국 야구에서는 오랫동안 제 실력을 뿜지 못하고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다가 잠재력을 폭발시킨 선수들의 활약을 주목할 만 했다. 타이틀 홀더 중에서도 MIP감을 뽑을 수 있고 무엇보다 올 시즌 최우수선수(MVP)가 된 박병호(26, 넥센 히어로즈)도 MIP로 높이 평가하기 충분하다.
지난해 7월 31일 2-2 트레이드를 통해 LG에서 넥센으로 이적한 박병호는 올 시즌 전 경기(133경기)에 4번 타자로 출장하며 2할9푼 31홈런 105타점 20도루를 기록하며 홈런-타점 1위, 20-20 클럽 가입 등 엄청난 수훈을 보여줬다. 전반기 넥센의 돌풍을 이끌었음은 물론 이택근, 강정호와 함께 팀의 자랑거리인 LPG포를 쏘아 올리며 뛰어난 파괴력을 자랑했다.

특히 박병호의 활약이 높게 평가받을 만한 이유는 ‘나도 할 수 있다’라는 것을 다른 유망주들에게 보여줬기 때문이다. 성남고 3학년 시절 4연타석 홈런으로 주목을 받았으나 2005년 LG 입단 후 만년 유망주의 꼬리표를 달던 박병호는 LG에서 국가대표급 외야 요원이 넘쳐나 다른 선수에게 제 포지션인 1루를 내주고 2군을 맴돌던 선수다. 당장의 성적이 급했던 LG는 박병호에게 큰 인내심을 부여하지 못했고 결국 이적을 통해 새 길을 찾았다.
지난해 최하위 넥센에서 후반기 출장 기회 부여 속 2할5푼4리 13홈런 31타점으로 가능성을 비춘 박병호가 올 시즌 이 정도로 활약해줄 것이라고 생각한 이는 별로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박병호는 주변의 우려를 비웃으며 MVP로 탈바꿈했다. 이제 박병호를 ‘만년 유망주’로 부르는 이는 없다.
박병호의 팀 동료인 우완 선발 브랜든 나이트(37)도 MIP가 되기 손색없다. 지난해까지 나이트는 한국-일본에서 성공보다는 실패 쪽이 좀 더 어울리던 투수였다. 한 시즌 10승 달성도 2003년 다이에(소프트뱅크 전신) 시절이 유일했다. “사람이 좋으니까”라는 것이 삼성, 넥센에서의 재계약 이유 중 하나였던 나이트. 그 나이트가 올 시즌에는 16승 4패 평균자책점 2.20으로 장원삼(삼성)과 함께 다승왕 경쟁을 펼쳤음은 물론 평균자책점 1위, MVP 후보로 우뚝 섰다.
우리 나이 서른 여덟에도 어깨 근력이 떨어지지 않아 정통 오버스로로 높은 팔 각도에서 공을 던지는 힘을 자랑하는 나이트는 고질적인 무릎 부상에서 완벽하게 회복되었음을 알렸다. 뛰어난 자기 관리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표상인 동시에 국내 선수와의 화합은 물론이고 궂은 일도 도맡는 ‘마음씨 좋은 아저씨’의 인상을 지닌 선수. 외국인 선수이기는 하지만 다른 국내 선수들에게도 본보기가 될 만한 선수임에 틀림없다.
중간 계투 역사를 새로 쓴 홀드왕 박희수(29, SK 와이번스)는 어떨까. 올 시즌 박희수는 65경기 8승 1패 6세이브 34홀드 평균자책점 1.32를 기록하며 SK의 6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에 없어서는 안 될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경기 밖에서의 노력이 더욱 큰 중간 계투 요원에 대한 스포트라이트가 적을 뿐이지 공식 MVP 후보로 올라가기도 충분한 박희수의 수훈이었다.
지난 시즌 중반부터 SK의 필승조로 활약하며 4승 2패 1세이브 8홀드 평균자책점 1.88을 기록한 박희수는 올 시즌 자신의 전성시대를 활짝 열었다. 2006년 데뷔 후 첫 5시즌 동안 ‘제구는 좋지만 구속이 아쉬운’ 좌완으로 2군이 익숙했던 박희수는 포기하지 않고 기량을 절차탁마했고 올 시즌 제대로 자기 가치를 내뿜었다.
타이틀 홀더는 아니지만 시즌 중후반 가장 강력한 선발 투수의 포스를 내뿜었던 노경은(28, 두산 베어스)도 MIP가 될 만 하다. 2003년 데뷔 이후 첫 9시즌 동안 제 자리를 못 잡고 방황하던 노경은은 올 시즌 중반 셋업맨에서 갑자기 선발로 보직 변경했으나 42경기 12승 6패 7홀드 평균자책점 2.53(2위)을 기록했다. 규정이닝을 채운 국내 투수 중 1위 기록이며 선발 성적만 따지면 10승 4패 평균자책점 2.23이다.
특히 노경은의 성공은 가장 극적인 ‘미운 오리의 백조화’로 볼 수 있다. 팔꿈치 수술 여부에 따른 은퇴 위기, 팬들과의 넷상 마찰로 한 때 구단에서도 껄끄러워했던 투수가 바로 노경은이다. 그러나 노경은은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생계 수단인 야구에 매달려 10시즌 만에 제 가치를 인정받았다. 노경은은 올 시즌 일구상 의지노력상의 주인공이며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예비 엔트리까지 이름을 올렸다.
열심히 하는 이가 세상에서 빛을 봐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성실성 여부와 관계 없이 스타와 범인(凡人)의 운명이 처음부터 갈려있다면 세상에 감동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오랫동안 어두운 터널 속에 숨어있던 이들은 올해 그 성실함의 보상을 받았다. 왕후장상의 씨는 따로 없다.
farinelli@osen.co.kr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