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에 선수 생활을 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축복이라는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체계적인 관리 시스템의 도입, 선수들의 의식변화로 ‘정년’은 점차 연장되는 추세다. 이는 이번 FA 시장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홍성흔(36)과 이호준(36)은 두 번째 FA 계약을 맺었다. 홍성흔은 두산과 4년간 총액 31억 원, 이호준은 NC와 3년간 총액 20억 원의 대우를 받고 각각 팀을 옮겼다. 첫 번째 FA 자격을 얻은 정현욱(34)도 LG와 4년간 총액 28억6000만 원의 조건의 계약서에 사인했다. 이 선수들로서는 30대 후반, 나아가서는 40대 초반까지 선수생활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진통도 많았다. 이 선수들이 모두 원소속구단에 남지 않았다는 것이 그 증거다. 그 진통의 중심에는 계약 기간이 자리했다. 구단들로서는 위험부담을 최소화하고 싶어 하는 게 당연하다. 그리고 이들은 30대 중반의 베테랑들이었다. 장기 계약을 제시하기에는 부담이 컸다. 지금까지의 공로, 그리고 현재의 가치는 인정하지만 변수가 많은 ‘미래’에는 두려움이 있었다.

실제 롯데는 홍성흔에게 3년 계약을, SK는 이호준에게 2년 계약을 제의했다. 삼성도 정현욱에게 3+1년의 계약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협상 테이블은 거기서부터 금이 가기 시작했다. 1년 차이에 불과하지만 선수들이 느끼는 체감 온도 차이는 컸다. 그 사이 다른 구단이 ‘1년’씩을 더 불러 이 선수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자연히 연봉 총액도 차이가 났다. 선수들로서는 기간과 돈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모양새가 됐다.
놓친 구단으로서는 섭섭한 마음이 크다. 한 구단 관계자는 “홍성흔이나 이호준은 지명타자이기 때문에 좀 더 오래 선수 생활을 할 수 있다. 정현욱도 몸 관리가 철저한 선수로 알고 있다”고 전제하면서도 “당장 1년은 모르겠지만 베테랑들의 몸 상태는 하루가 다르다. 계약 기간 말년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라고 했다.
FA 선수를 영입한 한 구단 관계자도 “선수의 능력을 믿는다”라고 했지만 “아무래도 전성기의 기량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 않겠는가”라고 단서를 달았다. 선수를 뺏긴 구단이나 영입한 구단이나 미래는 예상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회복력 자체가 젊은 선수들보다는 못할 것이라는 점에는 공감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선수들의 목소리는 반대다. 예전과는 야구 환경이 달라졌다는 이야기다. 나이 40을 먹고도 현역을 이어갈 수 있다고 말한다. 또 계약기간은 자신의 입지와도 관련이 있다. 자신에 대한 팀의 믿음을 계약기간으로 판단하기도 한다. 팀을 옮긴 세 선수가 나란히 “이 팀이 나를 더 필요로 하는 것을 느꼈다”라는 소감을 남긴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어쨌든 주사위는 던져졌다. 장기계약을 주저한 팀도 있지만 뜻을 맞춰주면서 유니폼을 입힌 구단들도 존재했다. 그렇다면 이제는 중대한 실험이 시작됐다고 할 만하다. 홍성흔 이호준은 40까지 선수 생활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고 정현욱은 불펜 투수로서는 많은 나이에 4년 계약을 맺었다. 이 선수들의 활약상은 “베테랑들에게 다년 계약을 제시하는 것이 옳은가?”라는 물음에 대한 직접적인 답이 될 수 있다. 이 답이 프로야구 전체에 미치는 파급력도 가볍지 않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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