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나빠 죄송합니다'..실감나는 악역의 귀환
OSEN 정유진 기자
발행 2012.11.21 11: 28

[OSEN=정유진 인턴기자] “죄송합니다”
제 17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영화 ‘남영동1985’ 시사 후 한 배우는 눈물을 흘리며 누구를 향한 말인지 모를 사죄의 말을 내뱉었다. 영화 속에서 민주화 투사 김종태를 고문하는 고문 기술자 이두한으로 출연한 배우 이경영이었다. 영화의 대표적 악역인 그는 그날의 눈물에 대해 OSEN과의 인터뷰에서 “배역이었지만 시대의 정신을 고문한 한 배우로서의 죄송함, 그 복합적인 느낌이었던 것 같다”라며 역사적 진실을 담은 영화에서 악역을 연기한 부담감과 소회를 밝힌 바 있다.
이렇듯 11월 개봉하는 영화들은 무거운 소재를 다룬 내용이 많고, 그만큼 존재감이 큰 악역 배우들이 대거 등장한다. 특히 그 중에서도 영화 ‘남영동1985’의 이경영, ‘26년’의 장광의 악인 연기가 많은 관객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들의 오랜 연기 경력에 대한 신뢰와 실존인물을 형상화한 극 중 캐릭터에 대한 호기심이 동시에 작용해 영화에 대한 기대감도 높이고 있는 것.

이경영은 80-90년대의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화려하게 수놓은 연기파 배우다. 10여년 전 있었던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인해 활동을 중단했다가 정지영 감독의 영화 ‘남영동1985’를 통해 연기자로서 본격 날갯짓을 한다. 영화에서 그는 과거 정권의 고문기술자였던 이근안을 모델로 한 이두한 역을 맡았다. 역할이 역할이니 만큼 각종 고문 도구들을 다루며 김종태 역의 배우 박원상을 심리적으로 실제에 가까운 고통 속에서 고문하는 연기를 해야 했다.
KBS 공채 성우 출신인 배우 장광은 지난해 광주 인화학교 성폭행 사건을 다룬 영화 ‘도가니’를 통해 배우로 얼굴을 알리게 됐다. 당시 그는 영화에서 농아 학생들을 성폭행하는 악랄한 쌍둥이 교장-행정실장 형제 역으로 주목을 받았고 이후 ‘광해, 왕이 된 남자’, ‘내가 살인범이다’ 등의 영화에 비중 있는 조연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도가니’ 당시 그는 실감나는 연기 때문에 실제로도 한동안 사람들로부터 ‘섬뜩하다’, ‘무섭다’ 등의 반응을 들으며 미움 아닌 미움을 받으며 살아야 했다.
그런 그가 또다시 영화 ‘26년’에서 악역을 맡았다. 5.18 광주 민주화 항쟁에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26년이 지난 후 사건의 원인이었던 ‘그 사람’을 죽이기 위한 작전을 벌이는 영화에서 ‘그 사람’ 역을 맡은 것. 그의 외모는 실제 전직 대통령과의 외모와 높은 싱크로율을 보여 관객들의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악역연기는 연기를 하는 본인에게도 본래의 성격을 거스르는 쉽지 않은 일일 수 있다. 연기지만 누군가를 윤리적-물리적으로 학대하고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불쾌한 경험일 것이다. 때로는 연기와 실제를 착각하는 사람들의 본의 아닌 오해를 받게 돼 난처한 일을 당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연기자들이 기꺼이 악역을 맡는 이유는 그만큼 한 작품 속에서 묵직한 악당의 존재감이 영화의 주제를 그려 내는데 가장 큰 기여를 하기 때문이다.
한편 ‘남영동1985’와 ‘26년’은 각각 오는 22일, 29일 개봉한다. 
 
eujenej@osen.co.kr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