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껏 야구하면서 올해 만큼 열심히 했던 적은 없었다".
9년 만에 국내 무대에 복귀한 '국민타자' 이승엽(36, 삼성)은 올 시즌을 돌이켜 보며 이렇게 말했다.
이승엽은 20일 삼성전자 구미사업장 직원 대상 특강에서 "그동안 언론을 통해 '이승엽은 필요없다', '팀워크를 해친다', '젊은 선수들을 키워야 한다'는 내용을 접했었는데 삼성과 계약한 뒤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8년간 일본 무대에서 뛰었던 그는 올 시즌 국내 무대에서의 변함없는 활약을 자신하면서도 9년 만에 복귀해 잘 모르는 투수들이 더욱 많았다. "37살의 나이에도 박석민, 김상수 같은 젊은 선수들에게 많이 물어봤었다. 이들이 상세히 잘 이야기해준 덕분에 두려움없이 시즌을 맞이할 수 있었다".
파란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에 뛸 수 있다는 자체 만으로 행복을 느꼈다. 최근 몇년간 부진한 모습을 보였던 그는 아침에 일어나는 게 달갑지 않았고 야구장에 가면 시계만 쳐다 보면서 한숨을 내뱉었다. 그토록 그리던 고향팀에서 뛸 수 있으니 세상 그 무엇도 부럽지 않았다.
"9년 전에 했었지만 다시 복귀해 정말 기쁘다".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 했다. 이승엽은 팀내 선수 가운데 야구장에 가장 먼저 출근한다. 정오 무렵이면 어김없이 야구장에 도착해 웨이트 트레이닝, 스트레칭 등 개인 훈련을 소화한다. 그 이유가 궁금했다.
"야구가 너무 하고 싶었고 그리웠다. 좋은 분위기 속에서 함께 호흡하고 싶었다"는 게 이승엽의 설명. 지금껏 단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짜릿함이라고 할까. 모 코치는 이승엽에게 "집에서 더 쉬어라"고 권유했으나 "집이든 야구장이든 몸조리 잘 할 수 있으니 믿어 달라"고 했단다.
지난해 사상 첫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삼성은 이승엽까지 가세해 그야말로 막강 전력을 구축했다. 그러나 삼성은 시즌 초반에 부진의 늪에서 허덕였다. 그럴때마다 이승엽의 마음은 더욱 무거웠다. '내가 와서 그런건가', '암적인 존재인가' 하는 생각도 자주 했었다.
이승엽은 "팀내 최고참인 진갑용 선배님이 삭발한 뒤 나를 비롯한 후배들도 동참하기 시작했다. 우연은 아니지만 그때부터 성적이 좋아지기 시작했고 전반기가 끝날 무렵에 1위에 오른 뒤 한 번도 선두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금껏 네 차례 우승을 경험했던 이승엽은 "어느때보다 값진 우승"이라고 표현했다. 이승엽은 올 시즌 타율 3할7리(488타수 150안타) 21홈런 85타점 84득점으로 녹슬지 않은 기량을 선보였다. 일본 무대에 진출하기 전 성적과 비교하면 분명히 만족할 수 없는 수치다. 그렇지만 이승엽의 생각은 다르다.
"내가 하고 싶었던 야구를 원없이 했었다. 이 성적은 단순히 기록만으로 봐야 할 게 아니다. 지금껏 야구하면서 올해 만큼 열심히 했던 적은 없었다".

올 시즌이 끝난 뒤 각종 행사에 참가하느라 빡빡한 스케줄을 소화하면서도 이런 게 행복이라는 걸 느낀단다. "어릴 적에는 우승 직후 바쁠때면 쉬고 싶은데 못 쉬게 한다고 짜증만 냈었는데 올해 좋은 성적을 거두고 바쁘게 시간을 보내는 게 행복이라는 걸 느낀다. 아마 나이가 들어 그런 것 같다".
이승엽은 42세까지 현역 유니폼을 입는 게 목표다. "언제까지 선수로 뛸 수 있을지 장담할 순 없다. 현재 상황을 야구로 표현하자면 8회말쯤 된다. 하지만 마음만은 5회라고 여기고 싶다".
어릴 적부터 파란 유니폼을 입고 뛰는 게 꿈이었던 그는 "사랑하는 야구를 오랫동안 하고 싶다. 그게 마음 만으로 되는 건 아니지만 최대한 오래 하고 싶다. 야구에 미련이 없고 그만 해도 된다 싶을때 아니면 야구에 대한 자신이 없을때 과감히 떠나겠다. 개인적으로 42세까지 하고 싶다"고 말했다.
흔히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산다'고 말한다. 이승엽 또한 마찬가지. "야구 인생이 끝난다면 제2의 인생이 시작될텐데 야구장에 있는 게 나의 꿈이다. 배운 게 야구 밖에 없으니 사업을 하거나 다른 일을 하면 망할 수 있다".
이승엽은 현역 은퇴 후 그라운드에서 함께 호흡하길 원했다. 그는 "지금껏 경험했던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천천히 들려주고 싶다.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후배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이보다 기쁜 일은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일까. 이승엽은 "나는 죽을때까지 야구인이다. 야구가 없으면 내 인생도 없다. 죽을때까지 야구만 생각할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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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구미사업장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