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진(25)의 몸값을 놓고 LA 다저스와 스콧 보라스의 본격적인 ‘밀고 당기기’가 시작됐다. 최종 합의까지는 아직 넘어야 할 난관이 많은 가운데 주목받는 이름이 있다. 바로 잭 그레인키(29, LA 에인절스)다.
다저스는 류현진 포스팅에서 약 2570만 달러(280억 원)을 써내 우선협상권을 따냈다. 이제 남은 것은 연봉 협상이다. 다저스와 보라스는 지난 20일(한국시간) 류현진을 놓고 처음 만났다. 구체적인 금액이 오가지는 않았지만 협상 시작을 알렸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깎으려는 다저스와 조금이라도 더 받으려는 보라스의 치열한 공방전이 막을 올린 셈이다.
양측은 이미 한 차례 신경전을 벌였다. 보라스는 지난해 마이애미와 4년간 총액 5800만 달러(627억 원)에 계약한 베테랑 투수 마크 벌리(토론토)를 거론했다. 류현진이 그 정도 가치가 있음을 강조하며 다저스를 압박했다. 이에 다저스는 다음달 4일부터 열리는 윈터미팅 종료 후 협상에 들어갈 수도 있다고 말하며 반격에 나섰다. 12월 11일까지 계약을 마쳐야 하는 류현진의 사정을 역이용한 전술이다.

물론 다저스가 류현진을 포기할 가능성은 낮다. 그럴 것이라면 애당초 2500만 달러가 넘는 포스팅 금액을 책정하지 않았을 공산이 크다. 포스팅 금액 자체가 영입 의사를 대변한다고 봐야 한다. 류현진 또한 미국행 의사가 확고하다. 하지만 입단 여부를 떠나 몸값을 놓고 협상이 생각보다 오래갈 가능성은 엿보이고 있다. 그 중심에 그레인키가 있다.
2009년 아메리칸리그 사이영상 수상에 빛나는 그레인키는 이번 FA 시장에 나왔다. 투수 중에서는 단연 최대어라는 평가다. 6년 총액 1억5000만 달러(1623억 원)가 협상의 기준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입이 벌어지는 고액임에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다저스의 입질이 심상치 않다. 부동의 에이스 클레이튼 커쇼와 함께 선발진을 이끌 선수로 그레인키를 염두에 두고 있다.
엄청난 자금력과 투자 의지가 뒷받침되기에 가능한 구상이다. 지난해 이맘때만 해도 파산 위기에 고민했던 다저스는 매직 존슨을 위시로 한 새 구단주 그룹이 팀을 인수하면서 ‘큰 손’으로 거듭났다. 시즌 중 보스턴과의 대형 트레이드로 조시 베켓, 아드리안 곤잘레스, 칼 크로포드 등을 영입하며 연봉 총액이 크게 늘어났음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분위기다. 전력 보강을 위해서라면 더 많은 금액도 지출할 용의가 있는 다저스다.
차선책으로 여겼던 구로다가 양키스와의 재계약을 확정지은 상황에서 현지 언론은 다저스가 그레인키에 올인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만약 그레인키를 품게 된다면 다저스의 내년 팀 연봉은 2억 달러(2164억 원)를 뛰어 넘게 된다. 몇몇 선수들의 트레이드나 방출로 규모를 줄일 수는 있겠지만 엄청난 수준임에는 틀림없다.
이 경우 류현진에게 돌아갈 몫도 줄어들 수 있다는 게 문제다. 팀 연봉 총액을 마냥 늘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그레인키라는 특급 에이스를 확보한 다저스가 류현진과의 협상에서 소극적으로 돌변할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보라스의 협상 전술이 류현진의 미국행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보라스가 일정 부분을 양보하는 시나리오도 그려볼 수 있다.
다만 협상이 적절한 수준에서 잘 마무리될 경우 류현진으로서는 나쁠 것이 없다. 그레인키를 영입한다면 다저스는 리그 최정상급의 원투펀치를 보유하게 된다. 그렇다면 굳이 불필요하게 많은 선발 투수들을 보유하고 있을 필요는 없다. 애런 하랑, 크리스 카푸아노, 테드 릴리 등 몇몇 선발 요원들을 트레이드 시장에 내놓을 수 있다는 뜻이다. 류현진으로서는 선발 로테이션 진입 경쟁을 피하는 동시에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한 3·4선발 자리에서 MLB 연착륙을 노려볼 수 있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