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 최용수. 그는 1990년대 한국축구를 이야기 할 때 결코 빠질 수 없는 인물이다. 오랜 축구팬이라면 1996 애틀란타올림픽에서 ‘꾀돌이’ 윤정환과의 환상적인 콤비플레이나 1998 프랑스월드컵 아시아 지역예선 당시 차범근호를 먹여 살렸던 장면을 기억하는 건 어렵지 않다. 그 만큼 최용수는 당대 최고의 스트라이커였고 한국축구의 주연이었다.
그런 최용수가 10년이 지나 또 하나의 작은 신화를 써냈다. 바로 감독으로서 K리그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흔히들 스타플레이어 출신 감독은 성공하기 어렵다곤 하는데 FC 서울의 감독 최용수는 아니었다.
물론 걱정과 우려, 시행착오도 있었다. 그는 21일 제주전(1-0, 승)에서 우승을 확정한 뒤 “한 시즌 내내 선수들과 싸우고 화해하고, 또 싸우고 화해하는 것을 반복한 것 같다”며 쉽지 않았던 지난 한 해를 회상했다. 또 시즌 첫 경기에선 ‘최고 용병’ 데얀의 태업 파동을 겪으며 시험에 들기도 했다.

그러나 최 감독은 이를 슬기롭게 극복하며 결국 우승을 해냈다. 대행 꼬리표를 뗀 첫 시즌이었지만 최용수의 서울은 윤성효의 수원과 이흥실의 전북, 황선홍의 포항 등을 모두 제치고 보란 듯 K리그 정상에 섰다.
그렇다면 과연 ‘초보감독’ 최용수의 어떤 면이 이런 결과를 만들어낸 것일까. 최 감독은 이에 대해 “철저히 조연으로 선수들의 꿈을 이뤄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선수 시절 우승 할 때는 내가 잘 해서 우승한 것 같다”고 말을 이은 그는 “그러나 감독으로서는 내가 잘 하는 것보다 선수들이 잘 하도록 이끄는 것이 감독의 일이라 생각했다. 내가 주인공이 되는 것 보단 선수들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조연이자 도우미가 되고 싶었다”고 설명, 현역 시절의 명성이나 감독으로서의 권위를 잠시 접은 채 자신을 낮췄음을 설명했다.
스타 선수였다는 점은 잊고 자신의 선수들을 위해 철저히 조연이 되고자 했던 마인드는 초짜 감독임에도 단박에 팀을 리그 우승으로 이끌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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