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봉 위원님과 인터뷰 자리를 먼저 가졌는데 목표를 좀 더 높이라고 하시면서 12승과 20번의 퀄리티스타트(선발 6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를 지정해주시더라고요. 높이 평가해주셔서 황송하던데요”.(웃음)
큰 키에 장난기가 듬뿍 묻어있는 인상. 그러나 그가 보는 자신의 야구는 진지했고 또 팀 승리를 우선시하는 마음이 먼저 느껴졌다. 삼성과의 한국시리즈에서 2패를 당했으나 선발로서 제 몫을 확실하게 해내며 다음 시즌 그리고 그 다음 시즌의 희망을 밝힌 윤희상(27, SK 와이번스)의 야구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선린인터넷고를 졸업하고 지난 2004년 SK에 2차 1라운드(전체 3순위)로 지명되었던 윤희상은 193cm의 장신 투수로서 대단한 성장 가능성을 평가받았던 대형 유망주였다. 그러나 어깨 부상으로 인해 제 실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한때 투수로서 야구 인생을 끝내고 타자 전향을 계획하는 등 선수 생활에 크나큰 위기를 맞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 지난 시즌 중반부터 비로소 가능성을 현실화하기 시작한 윤희상은 올해 팀에 없어서는 안 될 투수로 자리잡았다. 줄부상으로 신음하던 선발 투수들이 많던 가운데 윤희상은 홀로 꾸준히 선발 로테이션을 지키며 28경기 163⅓이닝 10승 9패 평균자책점 3.36의 성적을 거뒀다. 선발로서 기본 덕목인 퀄리티스타트도 16번을 기록하며 8개 구단 선발투수들 중 공동 8위에 올랐다.
미완의 대기에서 미완 꼬리표를 떼고 진짜 실전용으로 발전한 윤희상은 자율 훈련에 힘을 쏟고 있다. 지난 22일 문학구장에서 만난 윤희상은 “즐겁고 행복한 한 해였다”라며 한 시즌을 돌아보고 아쉬웠던 부분과 뜻 깊었던 부분을 함께 언급했다. 특히 삼성과의 한국시리즈 1차전 완투패(8이닝 3실점)에 이은 5차전 7이닝 2실점 분패와 관련해 윤희상은 자신의 숨겨진 공헌도보다 팀이 패했다는 데 더욱 미안한 마음을 비췄다.
“마지막 한국시리즈에서 준우승에 그친 것이 아쉬웠어요. 그래도 좋은 기회를 잡아 아프지 않고 한 시즌을 치렀다는 점은 정말 뜻 깊었습니다. 한국시리즈 2패요? 주위에서는 많은 이닝을 던져 한편으로는 계투진에 도움을 줬다고 위로를 해주셨지만 패한 경기라 크게 의미는 두지 않고자 합니다. 특히 5차전은 시리즈 승부처라 제가 절대 점수를 줘서는 안 되는 경기였거든요. 선제점을 허용하며 끌려가는 경기를 해서 제 스스로 안타까웠어요. 진 경기였으니 제가 몇 이닝을 던졌다는 것은 염두에 두지 않았습니다”.

부상 전력의 유망주가 이제는 풀타임 선발 투수로 거듭났다는 자체는 다른 투수들에게도 희망이 되기 충분하다. 윤희상도 자신이 풀타임 선발 투수로 공헌했다는 데 의의를 두면서도 아직 정신적인 부담이 남아있음을 이야기했다.
“몸은 확실히 아프지 않아요. 꾸준히 제 스스로 관리했다고 자부합니다. 그러나 정신적인 부담감은 약간 남아있어요. 다쳤던 부위가 굉장히 중요한 곳이니까요. 그 부담감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더라고요. 그만큼 또 더욱 준비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부상 재발에 대한 압박감은 남아있으나 꾸준한 자기 관리를 통해 극복하겠다는 진지한 마음이 전해졌다.
윤희상이 더욱 매력적인 투수인 이유는 또 하나 있다. 그는 자신의 새로운 무기를 장착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직구 구위 감소 현상을 피하기 위해 배우지 않는 구종도 있으나 선발로 더욱 대성하기 위해 그는 다른 동료들의 주무기를 사사하는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때로는 ‘생활의 발견’을 통해 자신의 무기를 발견하기도 했던 윤희상이다. 이제는 주무기가 된 포크볼은 장난처럼 던진 캐치볼이 그 시작점이었다.
“2군에 있을 때 이재인(현 상무)과 캐치볼을 하다가 포크볼을 한 번 던져봤는데 뚝 떨어지더라고요. ‘아, 이거 괜찮겠다’ 싶어서 포크볼 명인들의 동영상을 보고 제 스스로 연구했어요. 정규 거리에서 많이 던지면 몸에 무리가 갈 까봐 가까운 거리에 그물망을 놓고 공 한 박스 분량을 갖다놓고 계속 어떻게 놓는 지 연구도 해보고. 하루에 200~300개 정도는 그렇게 릴리스포인트를 잡아서 채는 감을 익히고자 했어요. 제가 좀 ‘벼락치기’ 스타일이라서요”.(웃음)
“(정)우람이의 체인지업을 보고 익히면서 손에서 공을 놓을 때 어떤 감으로 잡아채는 지 물어보고 또 제 스스로도 연습을 했습니다. 슬라이더의 경우는 (송)은범이형한테 물어봤어요. 선발로서 가장 탐나는 구질이요? 넥센의 (브랜든) 나이트가 던지는 투심 패스트볼이요. 오른손 타자 몸쪽으로 꺾이는 투심으로 선발로서 보다 더 많은 이닝을 소화하는 선수가 되고 싶습니다”.
꾸준히 로테이션을 지키며 10승과 160이닝 이상을 기록한 윤희상. 다음 시즌 목표를 물어보았을 때 좀 더 상향된 수치가 답으로 나올 줄 알았다. 그런데 윤희상의 답은 예상과 완전히 달랐다. 10승과 150이닝 이상. 이미 올 시즌 모두 이룬 성적들을 이야기한 윤희상은 앞으로도 꾸준히 던지며 롱런하는 선발로 기억되길 바랐다.
“10승과 150이닝이 다음 시즌 목표에요. 팀이 원할 때 꾸준하게 로테이션을 지키면서 제 몫을 오랫동안 해내고 싶습니다. 사실 이효봉 해설위원(XTM 해설위원)께서 얼마 전 인터뷰를 하시면서 ‘좀 더 목표를 올려보자. 12승-퀄리티스타트 20회 어떠니’라고 말씀하셨어요. 좋은 평가를 해주시고 기를 북돋워주셔서 너무 황송하더라고요”. 해박한 지식의 야구인이 이미 인정한 선발 투수가 되었으나 윤희상은 겸손했다. 그리고 더 배우고 싶은 기술을 위한 열망도 숨기지 않았다. SK 팬들이 윤희상에게 갖는 기대감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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