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때 다치고 나서 그냥 야구를 그만두려고 했어요. 그런데 거의 매일같이 병원에 찾아와서 많이 힘을 줬지요. 아내가 그렇게 붙잡아주지 않았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거에요”.
마침 함께 이야기를 나눈 날이 결혼 4주년 기념일이었다고 하네요. 데뷔 이래 최고의 한 해를 돌아보며 뿌듯해 하던 남편은 12년 가까이 자신을 묵묵히 지켜 준 아내에 대한 고마움과 함께 자신의 존재 이유를 이야기했습니다. 1년 전 초라한 방출생에서 어느덧 1군 주력급 선수로 마운드에 오른 박정배(30, SK 와이번스)는 동갑내기 아내 장희선씨에 대한 무한 신뢰와 애정의 마음을 나타냈습니다.
지난해 두산에서 방출된 뒤 입단 테스트를 통해 SK에 입단한 박정배는 페넌트레이스에서 37경기 4승 3패 3홀드 평균자책점 3.14으로 막판 계투 필승조로서 팀의 플레이오프 진출 확정에 공헌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박정배는 삼성과의 한국시리즈 2경기에서도 계투 추격조로 2경기 평균자책점 2.45로 분전했습니다. 특히 1-6으로 뒤지던 3차전에서 어깨 통증에도 불구, 상대 분위기를 꺾는 2⅓이닝 2피안타(사구 2개) 1실점 호투로 12-8 역전승 바탕을 마련한 것은 보이지 않는 수훈이었습니다.

한양대 3학년 시절 낙상으로 인해 왼 발목 뼈가 으스러져 야구 인생은 물론이고 일반인으로서 정상적인 생활도 불투명했던 시절을 보냈던 박정배. 우여곡절 끝에 2005년 두산에 2차 6라운드로 입단했던 박정배는 지난해까지 1군보다 2군이 훨씬 익숙했던 투수입니다. 착한 성품과 대단한 성실성으로 동료들의 돈독한 신뢰를 얻었으나 1군 무대는 보이지 않는 노력보다 보이는 기록을 우선시하는 마당이었지요. 결국 박정배는 지난해 방출 통보와 함께 SK에 테스트를 거쳐 입단했습니다.
프로 데뷔 이래 화려하지는 않아도 뜻 깊은 한 해를 보낸 박정배는 세밑을 앞두고 환한 웃음 일색이었습니다. 22일 자율 훈련을 소화한 후 귀가를 앞두고 거리를 거닐다 크리스마스 트리를 판매하는 문구점 앞에서 “어떤 게 괜찮을까요”라며 고민하기도 했고요. 2008년 11월 22일 결혼한 박정배는 네 살 된 딸 가율양과 지난 8월 태어난 아들 태령군 두 아이의 아버지이기도 합니다.
“결혼 4주년 기념일에 맞춰서 지인을 통해 반지를 구했어요. 그래서 물건이 언제 오나 기다렸는데 퀵 서비스 분이 전날 가족들 다 같이 있을 때 너무 빨리 오셨더라고요. 몰래 제가 입수했다가 당일날 맞춰서 선물하려던 계획이 들통났지요, 뭐”.(웃음)

대학 신입생 시절 신고식 때 동행할 파트너가 없어 사흘 전 미팅 자리에서 아내를 만난 박정배는 “그 때는 서로 별로라고 둘 다 ‘내가 폭탄 제거반’이라고 그랬어요”라며 첫 만남 당시를 떠올렸습니다. 그와 함께 박정배는 자신의 옷차림을 떠올리며 “붉은 운동화에 추리닝 바지, 그리고 검은색 바탕에 가로 줄무늬 세 개 짜리 니트 입고 갔었어요. 제가 생각해도 촌스럽기는 했어요”라고 묘사했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폭탄 제거반은 아내 분”이라고 답했고 박정배는 ‘크하’ 소리와 함께 웃었습니다.
“뭐 어쨌든 그렇다고 해둡시다.(웃음) 그런데 어떻게 인연이 되어서 친구로 지내다가 3학년 때 크게 다쳤었거든요. 그 때는 정말 야구도 하기 싫고 모든 것을 손에서 놓고 싶었던 순간이었는데. 그 때 제 아내가 병원에 자주 찾아와서 우울해 하던 제 기를 북돋워주고 포기하지 말라고 따뜻한 이야기도 많이 해줬습니다. 아내가 아니었다면 벌써 야구 관뒀겠지요”.
우여곡절 끝에 프로에 데뷔하기는 했지만 박정배의 시련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2군이 익숙했던 야구 인생. 빛을 못 보던 만큼 저연봉으로 수 년 째 살아가던 박정배였으나 그의 아내는 지아비를 믿고 지켜보며 힘을 주었습니다. 공익근무 소집해제와 함께 박정배는 2008년 11월 22일 백년가약을 맺었고 어느덧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당당히 한 팀의 1군 투수로 자리 잡아 가고 있습니다. 데뷔 이래 2000만원대를 벗어나지 못했던 그의 연봉도 수직 상승이 기대됩니다.
“이전까지 많이 힘들었지만 그만큼 아내가 제게 많은 힘을 불어넣어 줬습니다. 그만큼 아내에게 값진 선물을 주고 싶었는데 그나마도 반지가 전날 들통이 나 버려서”.(웃음) 야구 선수로서 제 가치를 인정받는 한 해를 보냈기 때문인지 그의 웃음은 예년보다 확실히 여유가 있었습니다. 살갑게 애정 표현을 하는 스타일은 아닌 ‘상남자’ 박정배였지만 이날 만큼은 오랫동안 자신을 지켜 준 아내에 대한 고마운 진심을 전하고자 했습니다. 2012년 11월 22일 저녁은 박정배 가족에게 굉장히 뜻깊은 하루가 되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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