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cm의 장신에서 나오는 높은 타점. 직구처럼 날아들다 갑자기 뚝 떨어지며 타자를 혼란에 빠뜨리는 포크볼이 어느덧 리그의 대세가 되고 있다. 올 시즌 10승을 올리며 SK 와이번스의 우완 에이스로 거듭난 윤희상(27)의 포크볼은 이제 리그의 명품 구종 중 하나다. 그런데 이 명품 포크볼은 장난처럼 했던 캐치볼에서 비롯된 공이다.
선린인터넷고를 졸업하고 지난 2004년 SK에 2차 1라운드(전체 3순위)로 지명되었던 윤희상은 193cm의 장신 투수로서 대단한 성장 가능성을 평가받았던 대형 유망주였다. 그러나 어깨 부상으로 인해 제 실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한때 투수로서 야구 인생을 끝내고 타자 전향을 계획하는 등 선수 생활에 크나큰 위기를 맞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 지난 시즌 중반부터 비로소 가능성을 현실화하기 시작한 윤희상은 올해 팀에 없어서는 안 될 투수로 자리잡았다. 줄부상으로 신음하던 선발 투수들이 많던 가운데 윤희상은 홀로 꾸준히 선발 로테이션을 지키며 28경기 163⅓이닝 10승 9패 평균자책점 3.36의 성적을 거뒀다. 선발로서 기본 덕목인 퀄리티스타트도 16번을 기록하며 8개 구단 선발투수들 중 공동 8위에 올랐다.

특히 평균 140km대 중반의 직구는 물론 타자의 방망이를 끌어내는 결정구 포크볼의 조합이 굉장히 좋았다. 한국시리즈 상대였던 삼성도 시리즈 개막 전 윤희상의 포크볼을 요주의 공으로 생각하고 공략 비책을 준비했던 바 있다. 현재 문학구장에서 자율 훈련을 하며 한 시즌 동안의 여독도 풀고 있는 윤희상은 과연 어떻게 포크볼을 습득했을까.
그의 포크볼 습득은 작정하고 연습한 것이 아니라 캐치볼하다 느낀 ‘생활의 발견’이었다. “새 구종을 습득하는 데 있어 최대한 팔꿈치와 어깨에 무리를 주지 않고자 가까운 곳에 그물망을 놓고 최소한의 팔 부담 속 릴리스포인트를 잡는 데 집중한다”라고 밝힌 윤희상은 자신이 포크볼러가 된 계기에 대해 이야기했다.
“습득하기 이전부터 포크볼을 던지고 싶다는 생각은 많이 했어요. 그렇지만 직구 구위가 떨어질 수 있는 우려를 주는 공은 배우려고 하지 않았던 마음도 있었고. 그러다가 2군에 있을 때 후배 이재인(현 상무)과 함께 장난처럼 캐치볼을 던지다가 ‘어, 이거 괜찮은데’ 싶더라고요. 재인이도 ‘공이 뭐 이렇게 뚝 떨어져요’라고 이야기하더라고요”.
그야말로 우연하게 던져본 공이 주무기가 되고 밥줄이 된 셈이다. 2009, 2010시즌 두산 시절 2년 연속 홀드 2위에 올랐던 사이드암 고창성(NC)의 경우도 경성대 시절 캐치볼을 하다가 그립을 약간 다르게 쥐어 던진 서클 체인지업이 싱커에 가까운 빠른 공이 되어 주무기로 체득한 전례가 있다. 고창성의 고교 동문이기도 한 윤희상의 포크볼도 그 우연함이 큰 몫을 해냈다.
“캐치볼 후 포크볼 동영상을 많이 봤어요. ‘저 선수는 어떻게 던지는구나, 어떤 위치에서 손을 놓는구나’ 이 점을 눈여겨봤고 이론을 습득했다 싶었을 때 그물망에 놓고 하루 200~300개를 계속 릴리스포인트 연습을 위해 던져봤어요. 그러다보니 어느새 실전용 구질이 되었네요”. 발견은 우연했지만 결국 제대로 된 주무기가 되는 데는 대단한 노력이 함께 했다. 말이 쉽지 투수들이 새로운 구종을 장착하는 데는 적어도 2~3년의 시간을 소요하는 경우가 많다.
처음부터 무조건 진지한 생각 만으로 큰 결과물을 얻는 것은 아니다. 윤희상의 경우는 부담없이 던졌던 캐치볼이 지금 자신을 명품 포크볼러로 성장하게 한 발단이 되었다. 포크볼에 대한 윤희상의 추억 속에서 일상의 교훈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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