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할 때마다 버라이어티 진출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물어보세요. 그거 불만이에요.(웃음)”
자신이 할 일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달려온 외길 인생이라면 믿을까. 운명 같았던 ‘개그’와의 만남을 진심으로 감사하고, 그 길을 위해 14년 동안 다람쥐 쳇바퀴 같은 삶을 살아온 개그맨 김대희(38)를 최근 서울 여의도 KBS 본관에서 마주했다.
인터뷰를 다 한 뒤 속에 있는 말 혹은 한풀이 할 시간을 주겠다고 하니 기탄없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자신의 개그 인생에 대해 ‘감 놔라 배 놔라’ 해왔을 많은 이들에게 던지는 말이기도 했고, 자신의 14년 개그인생에 대한 예의와 철저한 자기 신념을 가지고 한 뼈 있는 얘기였다.

결론부터 얘기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웃으러 갔다 인생 공부하고 나왔다. 빵 터진 ‘어르신’ 코너에서처럼 그는 KBS 2TV ‘개그콘서트’(이하 개콘)의 어르신이었다.
◆ ‘개콘’과 함께 시작한 개그인생..어느덧 ‘14년’
“우연히 대학로에서 컬트 삼총사 형님들 공연을 보고 감동을 받은 뒤 진로를 바꿨어요. 원래 연극배우가 꿈이었죠. 그 뒤로 14년 동안 개그만 했는데 믿기지가 않네요.(웃음) 저희끼리 한 주 인생이라고 하는데 수요일 녹화를 위해 목-금요일에 회의하고, 보충하고 자율학습하고, 월-화요일에 리허설을 하죠. 어떻게 지내왔나 모르겠어요. 그저 재밌었어요.”
지난 1999년 개그맨 입문과 함께 그해 탄생한 ‘개콘’에서 독보적이진 않지만 받쳐주는 개그의 1인자로 군림한 그는 ‘개콘’에 다양한 색깔을 입혀주며 그 존재 자체만으로 빛을 발하고 있다.
“저는 솔직하게 말하면 개인기가 특출 난다거나 말을 빨리하는 능력이 없어요. 그런 것에는 재능이 없는 거죠. 그런데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걸 좋아하다 보니까 제 스타일로 개그를 짜게 됐어요. 연기를 통한 상황의 반전을 이용한 개그죠. 그런 걸 좋아해요. ‘대화가 필요해’에 ‘밥 묵자’도 그렇게 나온 거죠.”
그런데 이 개그맨 정말 알고 봐야 한다. 욕심이 없다. 그저 개그만 하고 싶은 게 욕심이라면 욕심이란다.
김대희는 “예능 프로그램 진출에 욕심이 없고, 지금 자체로 만족을 하고 있다”면서 “빵 터지지 못한다고들 하시는데 개그맨들도 각자의 캐릭터가 있다. 가늘고 길게 가는 게 내 갈 길이라 생각했고, 지금 ‘개콘’을 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 김준호와 비교 지긋지긋? “자극 받았다”
그런 김대희에게는 뗄 레야 뗄 수 없는 존재가 있다. 바로 개그맨 김준호다. 한 살 어린 동생이자 동료 개그맨 김준호와 함께 ‘개콘’의 콤비로 활약해 온 시간도 길고, 그 무엇보다 언제나 늘 함께 했기에 그와의 비교는 늘 따라 다녔다.
최근 김준호가 KBS 2TV ‘해피선데이-남자의 자격’(이하 남격), ‘해피투게더3’(이하 해투3), ‘인간의 조건’ 등 다수의 예능 프로그램에 진출하고 활약해 어떠냐고 은근슬쩍 물으니 “솔직히 너무 좋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리고 속 마음도 얘기했다.
“콤비지만 서로 역할이 다르고 개그 스타일도 달라요. 제가 받쳐주는 역할이라면 준호는 빵 터뜨리는 역할이죠. 말도 재밌게 잘하고 잘 살려요. 그런데 예능으로 빛을 볼 거란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빨리 될 줄은 몰랐죠. 누군가는 제게 ‘배 아프지 않냐’고 직접적으로 물어보기도 해요. 준호가 잘 되는 걸 시기 질투할 정도로 저희 사이가 나쁘지 않아요.(웃음) 물론 지금 하고 있는 코미디 연기를 더 열심히 잘해야 하겠다는 자극을 준 건 사실이에요.”
조금은 민감한 질문일 수 있는데도 김대희는 속 깊은 대답을 했고, 김준호의 예능 진출과 함께 자신에게 쏠리는 관심에 대해서도 부담스러움을 고백했다. 그는 “콤비인식이 강해서 그런지 준호가 ‘남격’이나 ‘해투3’ 들어갈 때 저한테는 ‘언제’ 가냐고 하는데 그쪽에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예전보다 정말 열심히 하고 있어요. 준호가 제 개그에 불을지 지핀 거죠. 예능에서 활약할 시간에 저는 새 코너를 짜고 퇴짜 맞고, 그리고 다시 아이디어를 짜내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지금의 ‘소고기 할아버지’ 캐릭터를 만들어내게 된 것 같아요.”
서열이 서열인지라 남다른 고통도 있단다. 그는 “이제 어느덧 ‘개콘’ 서열 2위여서 NG내는 것에 부담을 갖게 됐다”면서 “후배들 몰래몰래 연습을 한다. 신인 때보다 대사를 더 열심히 외우는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 ‘개콘’ 발판삼아 예능 진출? “현실과 타협하지 말아라”
후배들에게 ‘이만큼만 하면 나 김대희처럼 14년 버틸 수 있다’고 조언을 남겨달라고 했더니 캐릭터만큼이나 어르신다운 말을 한다.
“주관을 갖되 아집과 욕심을 버리고 귀를 열었으면 좋겠어요. 옆에서 조언을 해주는 것에 귀를 기울이고, 최선을 다해 한 주 한 주 보내다 보면 저처럼 다 할 수 있을 것 같아요.(웃음) 준호와 신인 때 오전 10시에 모여서 새벽 3시까지 개그를 짰었어요.‘개콘’ 초창기 때는 그 생활이 너무 힘들었는데 그때 그렇게 까지 했던 게 아직까지 도움이 되고 노하우가 된 것 같다요.”
그리고 그는 안타까운 사연을 가진 한 개그맨 지망생을 언급하면서 후배들에게 뼈 있는 조언을 남겼다. 최근 아동 성폭행범 오보 사진의 주인공으로 병원신세를 지고 있는 전 모(21)씨는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이 풍파를 딛고 꿈의 무대인 ‘개콘’에 꼭 서고 싶다는 내용의 인터뷰를 했다.
“한 친구가 오보로 인해 성폭행범으로 몰렸더라고요. 그 친구 꿈이 개그맨인데 ‘개콘’ 무대에 서는 게 꿈이라고 했어요. ‘개콘’은 많은 개그맨 지망생들의 꿈의 무대에요. ‘개콘’에서 적당히 이름 알리고 난 뒤 중간 과정으로 삼은 뒤에 버라이어티 진출을 하는 친구들이 간혹 있는데 이건 다른 사람의 꿈을 빼앗는 짓이라고 생각해요. 자신의 자리에는 그만큼의 책임을 가져야죠. 잘못된 생각으로 남의 한 자리, 그리고 꿈을 빼앗는 거에요. 처음부터 예능 프로그램 하면 되잖아요. ‘개콘’을 버라이어티로 가기위한 발판으로 삼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처음 마음을 그대로 간직한 후배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는 ‘개콘’에서 잘 되면 예능프로그램에 진출하는 것이 공식화 되는 것도 조금은 거북스럽다고 했다. 김대희는 “저한테 이제 다른 프로그램에 진출을 모색해봐야 하지 않냐는 질문 좀 그만했으면 좋겠다”면서 “지금 ‘개콘’으로도 충분히 행복하고 잘 먹고 잘 살고 있다”고 웃으면서 말했다.

◆ “‘개콘’ 1000회 까지 하는 게 목표”
가슴에 열정을 가지고 있는 김대희는 14년이란 세월 앞에서 고개가 숙여지게 만드는 것 보다 오히려 자신과 마주하게 하는 힘으로 진정한 개그맨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의 열정이 빛을 발해 최근에는 ‘어르신들’에서 소고기 할아버지로 제2의 전성기를 달리고 있다. 최근에는 이 캐릭터로 광고도 찍었단다.
“‘대화가 필요해’로 지난 2008년에 의약품 광고를 찍은 후 오랜만에 찍는 CF에요. 소고기 할아버지가 이렇게 인기 있을지는 몰랐는데 이외수 선생님이 트위터에 제 대사를 인용해서 글을 남기시고, 댓글에 ‘뭐하겠노’라는 패러디를 보면 조금은 인기가 있는 것 같아요.(웃음)”
그리고 ‘개콘’ 어르신으로 눈 여겨 보는 후배가 있냐고 물었더니 우문현답이 돌아왔다. 김대희는 “‘개콘’에 힘이 될 만한 후배들이 너무 많다”면서 “표면위에 드러난 김준현, 김원효, 양상국, 허경환, 신보라, 정태호 등이 있지만 아직 빛을 발하려고 하는 후배들이 더 많다”고 답했다.
또한 김대희는 어르신답게 타 방송국 개그맨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 그는 “공중파가 됐건 케이블이 됐건, 종편이 됐건 각 방송국마다 코미디 프로그램이 하나씩 있었으면 좋겠다”면서 “시청률 싸움은 방송사 간의 싸움이지 개그맨들의 싸움은 아니다. 입문한 방송사는 다 다를지라도 개그맨은 하나지 않냐. 우리들이 나래를 펼칠 수 있는 무대가 많아지길 기대하고, 또 열심히 하는 다른 방송국 후배들에도 응원하겠다”고 말했다.
그런 그에게 조금은 심오한 질문도 던져봤다. 그렇게 애정을 쏟는 ‘개그’가 자신에게 어떤 의미냐고 물었더니 “나에게 개그는 밥”이라고 말한다.
“밥은 안 먹으면 죽잖아요. 개그는 제게 그런 의미에요. 그리고 ‘개콘’은 제 인생의 첫 직장이자 아주 오래된 연인이죠. 14년 동안 누군가를 사랑해 본 적이 없어요. 와이프도 1년 사랑하다 결혼했는데요. 하하. ‘개콘’을 힘닿는 데 까지 하고 싶어요. 우선적인 목표는 일단 1000회까지 하는 게 바람이에요. 운이 좋게도 하고 싶었던 개그를 하게 됐고, 지금 너무 만족하고 있어요. 그런 제 운명 같았던 ‘개그’로 시청자 여러분과 계속 마주하고 싶네요. 해 온 것보다 할 일이 더 많아요. 앞으로의 제 개그도 잘 지켜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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