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동 1985' 정지영 감독, "고문전시장 만들고 싶진 않았다" [인터뷰]
OSEN 최나영 기자
발행 2012.11.26 17: 06

고(故) 김근태 의원이 22일 동안 겪은 고문 수기를 바탕으로 한 영화 '남영동 1985'(22일 개봉)는 불편하고 힘들지만 동시에 재미가 있는 작품이다. 한국 관객으로서 근대사의 아픔을 직접적으로 목격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일이지만, 스크린 위에서 탄생한 야만의 시대는 단순 기록을 넘어서는 영화적인 재미로 관객들을 잡아 끈다. 연출은 기교도 군더더기도 없다. 숨 죽이듯, 하지만 강렬한 필체로 지옥을 정확히 묘사하는 책처럼 영화는 힘이 있다.
정지영 감독은 정치에 관심없는 사람들이 오히려 이 영화를 봐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전했다. 그는 "정치에 관심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볼 것이다. 오히려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면서 '우리 선배들이 이렇게 힘들고 아픈 고통을 겪어내며 민주주의를 얻어냈구나, 민주주의가 훼손되면 안 되겠구나'를 조금이나마 생각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정지영 감독에게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 이유에 대해 묻자 그는 "故 김근태 의원의 고문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처음에는 가해자를 그리고 싶었다"라고 밝혔다. "그런데, 김근태 의원이 돌아가시고 나서는 고문 자체를 그리고 싶었다"라고 덧붙였다. 정 감독은 '고문'이란 행위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존재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폭력성과 인간성 훼손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에게 영감을 준 것은 영화보다는 책이다. 88년도에 발표된 '붉은 방'이다.
"고문을 하는 경찰관이 있는데, 집에 오면 상당히 따뜻한 아빠인 이중적인 면모를 다룬 그런 소설이었죠. 장선우 감독이 만들려다가 압력을 받고 포기했죠. 안타까워 하다가 나중에 나는 이근안 경감 가족이야기를 그리고 싶더라고요. 줄거리를 사실 하나를 만들었어요. 이근안 경감의 딸을 설정했죠. 픽션으로 착실하고 좋은 아버지가 어느 날 신문을 보니 고문기술자였던 거죠. 자기 아버지인데 얼마나 놀랐겠어요. 자상한 아버지가 알고보니 어마어마한 고문기술자라니. 딸은 아버지한테 직접 확인하고 싶은 거죠. '아버지 당신이 진짜 고문기술자 맞느냐'고. 그래서 잠적한 아버지를 찾기 위해 떠나요. 그리고 또 다른 청년 한 명이 이근안 경감을 찾아 떠나는 거에요. 자기 이름을 안 대려고 하다가 정신병원에 간 친구를 둔 청년이죠. 각자 여행을 떠난 이 두 남녀를 그리려고 했어요. 이 얘기를 아는 작가한테 이 얘기를 했더니, 그걸 자기한테 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래라. 그럼 네 것을 원작으로 영화를 만들겠다'라고 했죠. 소설을 발표했는데 너무나 훌륭한 작품인데 정지영 과라기 보다는 박찬욱 과더러라고요. 하하."
원래 사랑 이야기 같은 말랑말랑한 것 보다는 사회적 성향의 영화가 본인의 취향이라는 정 감독이다. 그는 "사랑 이야기 보다는 그런데(사회적인 문제) 더 관심이 있다"라고 '남부군'에서부터 줄곧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영화들을 만들어 낸 이유에 대해 밝혔다.
'남영동 1985'에는 물고문, 고춧가루 고문, 전기고문이 등장한다. 그는 "고문 전시장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물론 실제로는 바늘로 손톱 밑을 찌르고, 볼펜으로 성기를 고문하는 것 같은 끔찍한 것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가장 보편적인 것을 선택해서 관객들과 함께 아파보고자 했어요. 너무나 고통스러운 것은 그냥 끔찍한 것으로 끝나버릴 위험이 있기 때문에 그런것은 피했습니다."
'부러진 화살'에 이어 배우 박원상이 김종태 역을 맡아 그야말로 열연을 보여준다. 정 감독은 "이 역할이 힘들 거고, 돈도 없다는데 누가 하겠나. 하지만 박원상이 나를 신뢰해 줬다"라며 그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이근안 역을 소화한 이경영에 대해서는 "그간 작품 활동을 안 했는데, 옛날 사건 때문에 배우인데 이렇게 쉬고 있으면 안 된다고 했다. 이 작품으로 제 모습으로 돌아오라고, 이 작품을 계기로 TV는 안 되더라도 영화로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라며 배우들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실제로 박원상과 이경영은 이 작품으로 배우로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이경영이 분한 고문기술자 이두한 캐릭터는 악역이자 시대의 피해자인 입체적인 캐릭터다. 영화 속 이두한은 비뚤어진 애국심에 사로잡힌 인물이지만 자기의 일을 사랑하는 전문가의 느낌도 물씬 난다. 그는 "전문가라는 것은 자기 일을 즐기는 사람이다. 일에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얻어낸 결과가 휘파람이다"라고 이두한이 영화 속에서 소름끼치는 휘파람을 부는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했다. 영화를 만들고 개봉하는데 압력은 없었는지에 대해. 이에 정 감독은 "그런 것은 전혀 없었다"라고 말하면서도 씁쓸해했다.
"사람들이 '압력은 없었나요?'라고 묻는 자체가 이 시대를 상징하는 건데, 참 슬프고 안타까워요. '이 영화 제대로 배급될까요?'란 질문도 마찬가지에요. 마치 배급이 안되는 것처럼 말이죠."
화제를 모은 '대선에 영향을 미쳤으면 좋겠다'라는 발언에 대해서는 "마치 야당을 유리하게 하는 것처럼 비춰지는 위험이 있는데, 적어도 감독은 치사하게 그런 얘기는 하지 않는다"라고 감독으로서의 소신을 드러내기도 했다.  
"대선에 영향을 미쳤으면 좋겠다는 의미는, 국민들이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과거사에 대한 인식을 갖느냐를 말하는 거에요. 누가 잘했고 잘못했느냐가 아니라, 어떤 인식을 갖고 있느냐가 중요한 거죠. 대선에 영향을 미친다는 말이, 누구를 이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이 진짜 원하는 후보를 뽑는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관객들이 이 영화를 봤으면 좋겠냐고 묻자 그는 "내 영화를 많이 본다는 것은, 내가 제기한 문제를 공유한다는 것이니 많이 보는 것을 바라는 바다"라며 웃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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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형 기자, 백승철 기자/ soul1014@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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