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점이 다르니 끓는점도 다르지 않겠어요.”
연예계 생활 13년차의 박정아는 ‘배우’라는 단어에 대해 조금은 남다른 느낌을 가지고 있는 듯 했다. 배우의 길을 걸어가기로 마음먹게 된 과정도 쉽지 않았고, 마음만큼 되지 않는 것이 연기라는 것에 대해서도 아는 듯 했다. 절실하지만 인내할 줄 아는 까닭에 지금 막 시작한 연기자지만 앞으로 써내려갈 얘기들이 궁금해졌다.
최근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KBS 2TV 주말극 ‘내딸 서영이’(이하 서영이)에서 의사이자 부잣집 딸 미경 역을 맡은 박정아를 합정동에서 마주했다. 가수에서 배우의 길로 접어든 박정아는 그동안 맡아왔던 차도녀의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소탈하면서도 성격 좋은 캐릭터를 맡아 일취월장한 연기력을 뽐내고 있다.

“처음 이 역할 맡게 됐을 때 이미지가 변화할 거라는 생각은 있었죠. 밝고 명랑하고 똑똑한 캐릭터니까요. 작품을 하면서 어떤 한 이미지에서 자유로워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엔 제대로 역할을 만난 것 같아요.(웃음)”
그런 박정아에게 아무리 그래도 선머슴 같은 역할인데 그동안의 이미지와 너무 다른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그게 매력이다. 성격도 좋고, 털털하고 사랑도 할 줄 아는 아이다. 어리숙 하고 맹한 구석이 있어서 그런지 더 매력적인 것 같다”고 말했다.

박정아가 맡은 미경은 자신의 오빠 우재(이상윤)의 부인 서영(이보영)의 동생 상우(박해진)와 친구에서 연인으로 발전하면서 진정한 사랑을 배우는 인물이다. 상우에게 자신의 집안을 숨긴 까닭에 서영의 진실과 겹사돈이라는 난관에 부딪치며 상우로부터 이별선고를 받게 돼, 현재는 처절한 감정의 변화를 겪고 있다. 연기하는 이의 부담도 커졌다.
“미경이라는 캐릭터가 사실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죠. 진정한 사랑을 찾기 위해서 자신의 배경을 속이잖아요. 그런데 여자 연예인으로 살면서 그런 ‘편견’에 대한 부분은 조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어요. 차이가 있겠지만 ‘평범하게 직장을 다니고 사랑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그 지점이 같더라고요. 게다가 부모님이 정략결혼을 하고, 세 남매가 외롭게 자랐다는 점에서 더 사랑을 갈구하는 인물이라고 생각했어요.”
조금은 난해한 질문을 과감히 자신의 얘기로 돌파한 박정아는 극중 캐릭터에 푹 빠져 있는 듯 했다. 예상치 못하는 난관에 빠지는 미경을 연기 하는 게 힘들지 않냐고 물으니 “물론 부담감이 있다”고 인정했다.
“우선 그 감정선을 따라가는 게 우선인 것 같아요. 감정 연기를 잘 하고 싶은데 생각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안 좋은 것 같아 오히려 생각을 안 하려고 하고 있죠. 연기를 해보니 그런 부분들은 계산을 하는 게 아닌 것 같아요. 있는 그대로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다소 진중한 얘기를 꺼낸 박정아에게 연기자 전향이 다소 부담스럽진 않았냐고 조심스레 물으니 화통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는 “가수 생활을 하면서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면서 “나는 다른 연기자들과 시작점이 다르기 때문에 끓는점도 다르다. 그것을 인정하고 시작했다”고 말했다.

“워낙 가수로서의 이미지가 크고 첫 작품에서 호되게 실패해서 연기를 안 하겠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움츠러들었죠. 못하겠다는 생각에 두려웠던 것도 사실이고요. 그런데 일일극을 두 번 하면서 공부를 했고 ‘부딪치자’라는 마음을 먹게 됐어요. 현장에서 배우면서 많이 느꼈고, 쉴 때는 단막극을 하면서 ‘나 같은 캐릭터를 원하는 곳이 있구나’라는 생각에 다시 마음을 고쳐먹고 조금씩 단계를 밟기로 했죠.”
그런 그가 연기자로서 가장 중점을 두는 것은 시청자들에게 ‘낯설지 않게’ 다가서는 것이었다. 박정아는 “대중의 무서움을 아는 사람으로서 내가 의도치 않은 상황들이 벌어질 까봐 두려움도 있고 연기력 논란에 휩싸일까봐 고민도 했다. 그래서 사실 조심스런 부분이 많다”고 밝혔다.
“조용하게 연기하다가 인정받고 싶었어요. 연기 조금 한다고 까부는 것처럼 보이기 싫었거든요. 일적인 면에서든 사랑에 있어서든 20대 때에는 도전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데, 30대가 되면서 선택의 폭이 좁아진 것은 인정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이제 서른 두 살. 내려놓게 되더라고요. 예전에는 발 뒤꿈치 주름도 싫었는데 이제는 여유롭게 보게 됐고 연기도 그런 마음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었어요.”
해탈한 듯 한 박정아에게 앞으로 가수가 아닌 연기자로서의 모습만 보게 되는 것이냐고 물으니 “제겐 이제 시간이 없다”면서 “노래에 눈을 돌리고 예능에 눈을 돌리고 할 시간 조차도 없다. 이젠 연기자 박정아로 살고 싶다”고 답했다.
“욕심은 나지만 대중의 눈이 익숙해질 때가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요. 많은 분들이 빨리 저를 사랑해주시고 인정해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하지만, 천천히 꾸준히 열심히 노력하고 있으면 제 그런 마음을 알아봐 주실 때가 있을 거라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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