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서운 타격솜씨에 빠른 발을 겸비한 타자에게 우리는 흔히 이런 단어를 가져다 붙이곤 한다. ‘호타준족(好打駿足).’
호타준족을 말할 때 예전에는 그저 잘 치고 잘 달리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기록상 타율이 높고 도루가 많다면 이의가 없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난 지금 이 단어의 의미는 이전 대비 그 범위가 상당히 좁아져 있다. 타자의 타율이 높다는 사실은 필요조건일 뿐, 현대야구의 기록적 해석에 있어 호타준족의 충분조건이 되지 못하고 있다. 정교함 이전에 정작 요구되는 것은 장타력이다.
기록적으로 호타준족을 말할 때, 우리는 타율과 도루가 아닌 홈런과 도루의 조합을 인용한다. 그리고 그것을 연계해 클럽이라는 이름으로 묶어 놓고 있다.

과거 한국프로야구 역사 속에서 호타준족형 선수로 불리며 당대를 호령하던 타자들은 상당수 있어 왔지만, 내용으로나 기록으로나 진정한 호타준족의 경지를 보여준 선수는 사실 극히 일부였다.
프로야구 31년간 호타준족 판단의 일차적 잣대가 되는 20홈런-20도루 기록이 작성된 횟수는 총 36차례. 1989년 해태의 김성한이 26홈런-32도루를 기록하며 첫 테이프를 끊은 이후, 모두 24명의 타자들에 의해 기록이 쓰여졌다. 적다면 적고 많다면 많은 숫자다.
그러나 팬들의 뇌리에 강인한 호타준족의 선수로 기억되기 위해서는 또 하나의 관문을 지나야 했는데, 그것은 기록의 연속성에 관한 문제였다. 어쩌다 한 해 반짝하고 사라지는 단발성, 일회성 기록이 아니라 그 기록자체가 일상이었던 선수로 능력을 인정받는 일. 여기에서 많은 선수가 문을 통과하지 못했다.
단적인 예로 2001년 포수 박경완(당시 현대)이 24홈런-21도루로 20-20클럽에 이름을 올렸지만, 그를 호타준족의 선수로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올 시즌 통산 도루수가 일천한 넥센의 박병호와 강정호가 나란히 20-20클럽 가입에 성공했지만 ‘준족’이라는 부분에서 성큼 동의가 어려운 것도 마찬가지 이유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장타력과 빠른 발 그리고 연속성에 이르는 호타준족의 모든 조건을 두루 갖추었던 선수로 우리의 기억에 가장 깊이 뿌리를 내린 선수 한 명을 꼽아보라면 그것은 단연 박재홍일 것이다.
1996년 그는 갓 대학을 졸업한 순수 신인이었음에도 사상 최초로 30홈런과 30도루 이상의 기록을 동시에 달성(30-36)해내며 생소했던 ‘박재홍’이라는 이름 석자를 만천하에 확실히 각인시킨 바 있다. 박재홍이 나타나기 전까지 20-20클럽 기록은 총 7차례 작성되었지만 30-30클럽은 당시 전인미답의 대기록이었다.
박재홍 등장 이후 지금까지 30-30클럽에 추가로 이름을 올린 선수를 살펴보면 박재홍을 포함시킨다 해도 고작 5명이 멤버의 전부다. 호타준족의 대명사로 기억되고 있는 또 한 명의 대표적 선수인 이종범(해태,1997년)을 비롯, 같은 해에 나란히 클럽 등록을 마친 홍현우(해태,1999년)-이병규(LG,1999년)-제이 데이비스(한화,1999년)와 박재홍 뿐이다.
이들 중 박재홍을 제외한 나머지 4명의 선수 모두는 30-30에 가입한 해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단발성 기록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박재홍은 달랐다. 1996년을 시작으로 1998년(30-43)과 2000년(32-30)에 걸쳐 한 해 걸러 한번씩 총 3차례나 30-30클럽에 이름을 올렸다. 마음만 먹으면 30-30쯤은 언제고 이룰 수 있는 무서운 능력을 갖춘 선수였다.
하지만 세월을 이기는 장사는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박재홍 역시 30대 후반에 접어들 즈음부터 출장기회의 감소와 함께 자연 홈런과 도루의 숫자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이로 인해 다소 낙관적으로 여겨졌던 ‘300홈런-300도루’라는 기념비적 기록달성 가능성 또한 그의 손아귀에서 점점 멀어져 갔다.
2009 시즌이 끝났을 무렵, 300-300을 향한 그의 기록 시계바늘은 286홈런-262도루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3년간(2010~2012) 박재홍이 추가한 기록은 겨우 14홈런-5도루가 전부였다. 그나마 홈런은 올 시즌 가까스로 300을 채워냈지만 도루는 여전히 게걸음질 치다 못해 올 시즌(2012)엔 아예 단 1개도 추가하지 못하고 제자리에 멈춰서고 말았다.
정규리그 말미에 1루 대주자로 나와 도루 1개라도 줄여보려 안간힘을 다해봤지만 결과는 도루실패. 힘 떨어진 ‘호타’보다 무뎌진 ‘준족’에 박재홍의 발목이 잡혀 있는 모양새다. 300도루에 불과 33개의 도루만을 남겨놓고 있지만 체감거리는 이보다 훨씬 멀게만 느껴진다.
300홈런-300도루. 팬들로부터 야구의 신으로 불리던 양준혁과 이종범은 이 기록의 어느 선까지 접근했었을까? 살펴보니 두 선수 모두 200-200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한 채 현역에서 물러났다. 351홈런의 양준혁은 200도루에 7개가, 510도루의 이종범은 200홈런에 6개가 부족(일본기록 제외)했다.
박재홍을 제외하면 200-200돌파는 고사하고 이 기록 언저리에 그 누구도 다가선 선수조차 없다. 그리고 가까운 시기에 300-300에 도전장을 내밀만한 선수 역시 찾아보기 힘들다. 그가 데뷔 이후 17년간 쌓아온 기록이 얼마나 높고 엄청난 것이었는지가 간접적으로 드러나는 대목이다.
역사가 길고 시즌 경기수도 우리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메이저리그와 일본프로야구에서도 통산 300-300클럽은 엄청난 대기록으로 대접받고 있다. 지금까지 메이저리그에서는 7명, 일본프로야구에서는 단 2명 만이 300-300의 반열에 올라있을 뿐이다.
메이저리그에서는 바비 본즈(332홈런-461도루), 안드레 도슨(438-314), 윌리 메이스(660-338), 배리 본즈(762-514), 레지 샌더스(305-304), 스티브 핀리(304-320), 알렉스 로드리게스(647-318)가, 일본리그에서는 장훈(504-319), 아키야마 고지(437-303)가 각각 300-300클럽 정회원으로 등록되어 있다.
한국프로야구에서 아직 단 한 차례도 기록된 적이 없는 퍼펙트게임이 가장 기다려지는 대기록으로 종종 일컬어지고 있지만, 박재홍의 300-300은 그에 못지 않는 가치를 지닌 대기록이라 할 수 있다.
2012년 겨울, 40세의 박재홍은 소속팀 SK의 2013년도 보류선수 명단에서 결국 제외되고 말았다. 선수로서는 방출이다. 다른 팀에서 불러주지 않으면 더 이상 선수생활을 이어나갈 수 조차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했지만, 지도자로의 신분변화보다 아직은 선수이기를 갈망하는 그의 바람은 300-300기록과 함께 안개 속을 떠돌고 있다.
윤병웅 KBO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