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주지훈, “작품에 대해 말들 많았지만..”[인터뷰]
OSEN 전선하 기자
발행 2012.11.30 08: 00

몸에 꼭 맞는 말끔한 슈트 차림으로 피아노 앞에 앉는 모습이 익숙했던 배우 주지훈은 어느새 머리카락을 회색빛으로 물들이고 옷차림 또한 편안함이 느껴지는 니트로 갈아입은 채 한결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지난 25일 종영된 SBS 주말드라마 ‘다섯손가락’(극본 김순옥, 연출 최영훈)에서 어머니와 사생결단의 모자(母子) 전쟁을 치르느라 대부분의 시간을 경직된 모습으로 화면 앞에 등장했던 그는 확실히 변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다섯손가락’ 속 주지훈이 연기한 지호 캐릭터의 운명은 드라마 사상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모질어도 너무 모질었다. 출생 직후 버려져 보육원을 전전하다 10대 시절 어머니와 재회하지만, 그가 맞닥뜨린 모정(母情)이란 겉과 속이 다른 모양새로 아들을 제거하는 데만 혈안이 돼 있는 분노 덩어리였기 때문.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성을 갈구하며 어머니와의 전쟁을 멈출 수 없던 게 ‘다섯손가락’ 속 지호의 모습이었다.
상처로 가득한 인물이 되어 감정의 극단을 한 회에도 수차례 오갔던 주지훈은 작품을 끝낸 소감을 묻는 질문에 “배운 게 많다”고 말했다.

“감정연기는 당연히 힘들어요. 특히 이번 작품은 진행 속도가 워낙 빨랐기 때문에 어떤 상황이 주어졌을 때 왜 이렇게 돼야 하는지, 배우가 인물의 감정을 충분히 느낄 새가 없었어요. 대신 저 스스로가 서브텍스트를 만들어 나가면서 이해해가야 했는데 30회 쯤 반복하다 보니 적응이 됐어요. 연기는 감성만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스킬도 있어야 하는 데 그런 면에서 배운 게 많죠.”
‘다섯손가락’은 당초 비극적 운명을 지닌 두 인물이 피아노를 매개로 성장하며 아픔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과정을 담도록 기획됐지만, 처음과 달리 복수극에 방점이 맞춰졌다. 당혹스러울 수도 있는 전개였지만 이에 대한 주지훈의 반응은 차분했다.
“드라마에 출연할 때 모든 배우들은 믿음에서 출발할 수 밖에 없어요. 기획의도를 보여주시지만 실질적으로는 보통 4회분까지 나온 대본만 보고 그 이후 내용은 아무 것도 모른 채 출연을 결정하게 되죠. 요즘은 시청자들이 대본 내용을 바꿀 정도로 힘이 세졌고, 드라마를 둘러싼 경제 논리 등 여러 가지로 작품을 압박하는 요인이 있었을 거라 생각해요.”
아쉬움이 남지만 주지훈은 ‘다섯손가락’을 통해 이제까지의 연기와는 다른 새로운 시도를 해보기도 했다. 이전까지 대본의 앞뒤를 꼼꼼하게 파악하고 치밀한 계산에 의해 연기를 했다면, ‘다섯손가락’에서는 즉흥성에 가중치를 둬 그때그때의 반응에 집중한 것.
“선배들 중에는 대본의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연기하는 게 맞다고 하시는 분들이 있고, 또 다른 분 중에는 전체 대본을 다 보고 대사를 아예 까먹으려고 노력한다고 이야기 하시는 분도 있어요. 이번에 저는 후자를 택해서 결말이나 진행을 일부러 묻지를 않았어요. 또 저희 대본이 대사가 길고 아주 구어체는 아닌 편이라 악센트를 주려고 노력했어요. 나중에는 그런 부분을 일부러 찾아서 좀 더 살려봤는데 재밌더라고요.”  
그렇게 시도한 주지훈의 연기는 시청자로부터 호평으로 돌아왔다. 폭발적으로 감정을 분출하고 극도의 슬픔에 처절하게 아파하는 지호의 내면을 에너지 있게 표현했다는 평이 주를 이뤘다. 대선배이자 칼 같은 연기력의 소유자인 배우 채시라와 붙는 신에 있어서도 주지훈은 결코 주눅 들거나 밀리지 않는 에너지로 갈등을 생생하게 구현했다.
“채시라 선배는 저 보다 한 달 정도 먼저 촬영을 시작하셨는데, 거짓말을 조금 보태서 단 한 장면도 놓치지 않고 모든 신에서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하세요. 그래서 선배와 맞서는 신에서는 오히려 제가 도움을 받아요. 왜 사람이 싸우고 싶은데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누구와 투닥 거릴 순 없잖아요. 그럴 때 누가 와서 시비를 붙이면 자연스럽게 싸움이 벌어지는 것처럼 선배와의 신에서는 워낙 철저한 연기를 펼치시니까 저절로 그 감정을 받게 되는 거죠.”
극중에선 모자 관계로 출연했지만 주지훈과 채시라의 나이차이는 실제로 열네 살에 불과하다. 게다가 채시라가 마흔 중반의 나이에도 고운 용모로 동안을 유지하고 있는 덕에 두 사람이 모자(母子) 사이가 아닌 연인관계로 보인다는 웃지 못 할 에피소드도 있었다.
“원래 대본상으론 훨씬 더 스킨십이 많았어요. 그런데 선배가 워낙 동안이라 연인처럼 보인다는 얘기가 있어서 연출을 맡은 최영훈 PD가 보기 이상하다고 스킨십 장면을 다 빼버리셨죠.(웃음)”
채시라의 ‘절대동안’ 외에도 예상치 못한 어려움에 즉석에서 제외된 신은 또 있다. 바로 시시때때로 등장한 격투신이다. 
“피아니스트 역할인데 액션신이 꽤 있었죠. 저는 키가 큰 편이라서 대역을 쓰기가 참 어려운 편에 속해요. 그리고 대역 촬영을 가만히 지켜보다 보면 제가 봐도 ‘이건 아닌데’ 할 때가 있어서 스스로 나서게 되는데 그러다가 피부가 찢어지기도 꽤 여러 번이었죠. 또 제 역할이 피아니스트이다 보니 몸에 피트 되는 슈트를 많이 입었는데 그러다 보니 보호구를 착용할 수가 없어서 더 취약했죠. 맨몸으로 콩크리트 바닥에 떨어지고 각목 잡고 휘두르다 손에 수두룩하게 가시가 박힌 적도 많아요.”
 
이 같은 소소한 어려움들 외에도 ‘다섯손가락’은 극 초반 출연자 은정이 진세연으로 갑작스레 교체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을 그는“기초공사부터 다시 해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된 것”이라고 표현하며 “은정이가 힘든 시기라 이름을 거론하는 것 자체가 안 좋을 수도 있지만 그 전에 은정이는 나보다 어린 동생이고 또 동료니까 잘 해결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피력했다.
평탄한 길은 아니었지만 주지훈은 ‘다섯손가락’에 출연하며 극을 중심에서 이끄는 활약으로 배우로서 한 단계 도약하는 성과를 이뤘다.
“개인적으로는 ‘다섯손가락’의 결말은 마음이 많이 아파요. 왜냐면 지호가 엄마가 죽은 줄 모르고 막이 내렸으니까요. 이후에 그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지호가 받을 충격이 어떨까 생각만 해도 안타깝죠. ‘다섯손가락’ 촬영하면서 열심히 했어요. 예전부터 시청률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고, 그것보다 배우에게 중요한 건 연기로 알고 그 부분에 집중해 왔어요. 내 선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에 대해선 (마음을) 놓는 편이에요. 작품에 대해 여러 가지 말들이 있지만 개개인마다 생각이 다른 거고, 저는 대중이 보고 느끼는 게 답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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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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