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예고된 참패인지도 모른다.
한국야구대표팀이 아쉬움 가득한 채로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를 마쳤다. 이연수 감독이 이끈 한국대표팀은 지난달 28일부터 대만 타이중에서 열린 제26회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에서 3승2패 3위로 대회를 마쳤다. 특히 마지막 2경기였던 일본-대만전에서 모두 영봉패를 당하며 무기력하게 물러났다. 2경기 도합 5안타 1볼넷의 타선 부진이 심각했다. 여러가지로 한국야구의 현실을 보여준 예고된 실패였다.
▲ 미비한 지원와 동기부여 상실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는 아시아야구연맹(BFA)이 2년마다 주최하는 성인대회로 지난 2007년 제24회 대회까지는 올림픽 예선을 겸했다. 당연히 각 포지션별 최정상급 프로선수들로 구성돼 대한야구협회-한국야구위원회에서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끝으로 야구가 올림픽 정식종목에서 제외되며 대회 중요성도 낮게 취급되고 있다. 이번 대표팀 멤버도 24명 중 1.5군 프로선수 16명, 상무·경찰청 3명, 대학생 5명으로 구성됐다.
대회 준비기간 동안에도 선수단 내에서는 열악한 지원으로 동기 부여가 되지 않았다. 유니폼·바람막이·장갑·넥워머 등 기본적인 용품의 여유분이 부족해 선수들이 각자 개인 용품으로 쓸 정도였다. 명색이 대표팀이지만 지원은 열악하고, 관심은 떨어졌다. 선수들이 국가대표라는 사명감과 책임-의식을 갖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이연수 감독은 "국가를 대표해서 나가는 팀이다. 예전보다 대회 중요성이 떨어졌다고 하지만 국제대회에서 한국 야구의 위상을 생각해야 한다"며 "제대로 된 협조가 안 되어있다. 협조가 없으면 대표팀의 존재가치도 없는 것 아니겠나. 다음 대회부터라도 협회와 프로팀에서 준비와 지원을 더욱 철저히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설상가상으로 대회 직전 에이스와 중심타자로 기대를 모은 임찬규(LG)와 나성범(NC)이 각각 허리·손목 부상으로 전열 이탈했다. 나성범 대신 나온 박정준(넥센)은 대회 첫 날 사구에 손등을 다쳤고, 이튿날에는 4번타자 이재원(SK)이 인대 부상으로 빠져나갔다. 프로 선수 16명이 포함돼 있지만 확실한 1군 주전이 없는 상황에서 주력 선수들 줄줄이 빠져나간 건 전력에 큰 타격이었다.
▲ 외연은 키웠으나 내실은 부족
한국야구의 정체된 기량도 이번 대회에서 여실히 드러난 현실이었다. 프로야구가 사상 첫 700만 관중 시대를 열었고, 내년부터는 NC의 합류와 함께 9구단 체제로 새롭게 시작한다. 프로야구의 시장은 그 어느 때보다 커졌다. 그러나 외연은 키웠으나 내실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1~2군의 격차는 여전히 컸고, 전반적인 경기력의 저하로 야구인들의 한숨을 자아냈다. 그 여파가 이번 대회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한국의 대표팀 멤버 24명 중 19명이 프로 경험이 있는 선수들로 1군에서 자주 모습을 드러낸 이들이다. 주로 1군 백업으로 나온 선수들이다. 그러나 A급 대표팀 선수들이 국제대회에서 보여준 것에 비하면 경기력이 너무 떨어졌다. 대표팀 지원 여부를 떠나 잘 못 던지고, 잘 못 쳤다. 사회인선수 16명과 대학생 8명으로 구성된 일본의 탄탄한 기본기는 한일야구의 저변 격차를 실감케 했다. 한국의 저변으로는 일본을 따라가기 버겁다.A급 선수들로는 일본과 대등한 경기가 가능하겠지만 그 아래급의 선수들로는 어렵다. 저변의 격차 탓이다.
특히 타자들의 부진이 눈에 띄었다. 일본전에서 대학생·사회인 투수에게 산발 2안타 1볼넷으로 막혔고, 대만전에서도 고교생 선발 쩡런허에게 끌려다니며 산발 3안타로 눌렸다. 자주 상대하지 않는 국제대회 특성상 투수들이 유리하다고 하지만 한국 타선은 너무 무기력했다. 대회 5경기에서 나온 홈런은 파키스탄전 조평호(NC)의 솔로포가 전부. 확실한 거포 부재 속에 타선 약화는 한국야구의 투고타저 현실이 그대로 나타났다.
프로야구는 내후년 10구단 체제를 목표로 준비하고 있다. 나날이 외연은 커져가는데 그만큼 내실은 키워지고 있는지 의문이 생긴다. 1~2군의 격차, 성적 지상주의, 투수 중심의 야구, 거포의 부재는 당장 9구단 체제에서도 흥행 저해의 소지가 있다. 팬들은 수준 높고, 재미있는 야구를 원한다. 팬들의 성원과 열기로 자라난 한국야구가 이에 보답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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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중(대만)=백승철 기자 baik@osen.co.kr